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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조포(潮浦)나루터
    국내 나들이/강(江)으로 2009. 3. 15. 20:14

    (대참사의 현장) 49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조포(潮浦)나루터

     

     

    조포나루(潮浦)는 삼국시대부터 서울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 4대 나루로 불리던 나루로


    충주에서 서울(한양)까지 배를 타고 오가며 풍물을 나르던 중간 기착지였다.


    그리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황포돛배(黃布)가 그림처럼 떠 있어,강이 아름다워 여강(驪江)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여강(驪江)주변은 기암절벽과 드넓은 모랫벌, 자연과 어우러진 승경(勝景)으로


    예로부터 경기도내에서 뛰어난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이처럼 비경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포나루에는 지금부터 40여 년전에


    안타까운 대참사가  일어 났던 슬픈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963년 10월 23일 경기도 여주군 신륵사로 수학여행차 소풍 갔다 돌아오던


    안양 흥안초등학교(현재 안양남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탄 나룻배가


    남한강 상류 조포나루터에서 침몰하여 남녀초등학생 37명과 교사와 학부모 12명 등


    총49명이 익사한 뒤부터 64년 현재의 여주대교 개통으로 폐쇄됐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신륵사앞 조포나루에 49명의 숭고한 목숨을 앗아갔을까??


    불교식 제의인 49재(齋)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49재와 49인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49재(齋)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로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사상이 절충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齋)를 올려 죽은 이가


    그 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그래서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부르며, 이 49일간을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生)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에 위치한 조포나루는 37번 국도를 따라 여주군청에서 신륵사 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여주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오른쪽  '신륵사' 유원지로 통하는 길에서 신륵사로 들어가 산책로로 진입하면 

    오른쪽 남한강변쪽으로 '조포나루터 표지석'과 '위령비'가 나란히 서 있다.


      
     


    조포나루터 표지석과  2006년 4월 15일 안양남초등학교(구, 안양흥안국민학교) 총동문회에서 설립한 위령비

     


     


    남한강의 본류인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서울 마포나루와 광나루,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나루로 불리던 조포나루로 충주에서 서울까지 수운의 이용이 번성할 시기에는

        이곳 신륵사 하류에 보제원(普濟院)이 설치되어 통행자의 숙박을 제공 하기도  하였다.

      1963년 10월 23일 안양 흥안국민학교 학생이 신륵사 수학여행차 이 나루를 건너다

    도선이 침몰되는 대참변이 일어나 49명이 익사한 후 1964년 현재의 여주대교가 개통되어

    유서깊은 이 나루는 자연이 폐쇄 되었다.


     

     


    위령비문

     

    1963년 10월 23일 경기도 안양시에 소재한 흥안국민학교(현재 안양남초등학교) 5.6학년 학생,교사,

    학부모 총158명이 여주 신륵사 수학여행을 마치고 이곳 조포나루터에서 나뭇배를 타고 귀가 하던중

    배가 기울며 침몰하여 학생,학부모,선생님 49인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있었다.

    이에 안양남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혼을 위로하는 비를 세우게 되었다.고히 잠드소서...



                   


    1964년 여주대교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이곳 조포(潮浦)나루에서 목선을 타고 남한강을 건너서 왕래했다.

     


     


    지금은 황포돛배와 수상스키,모터보트,고무보트 등 수상 레저활동을 할 수 있는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다.



     


    아직은 날씨가 추워 나루터를 찾는 발길이 뜸하고 한가롭다.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영월,단양,충주 등 충청지방을 두루 물굽이를 거쳐

    이곳 여주의 남한강으로 흘러 든다.

    이 곳의 강물줄기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 여강(麗江)으로 불리운다.


     

     

      

     조포나루터 반대쪽 강변에는 '강변 유원지'가 형성돼 있는데

    이곳에서 역시 '조포 나루'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변해 있다.



     


    여주는 한민족의 젖줄이라 불리우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이 있으며

    한강의 상류지방에 남한강을 끼고 있는 고장이다.

    과거 육상교통의 발달이 없고 수상교통이 발달했던 조선시대에는 모든 물자가

    이 뱃길로 교역됐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4대 나루하면 마포, 광나루, 이포, 조포나루를 말하는데,

    그중 이포와 조포가 여주에 있다는 것을 볼 때

    여주는 조선시대 상업도시로서 그 번성함이 얼마나 컸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 만큼 여주는 조선시대 중심상업도시로서 한강 상류지방의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였다.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여주시에서는 황포돛배를 복원하기 위해서

    2개월동안 전국을 조사해 한강 상류지방 특유의 황포돛배를 복원해 놓았다.

    특히 작은 규모가 아닌 웅장함을 살리기 위해 한강 상류지방의

    전통 모양과 규격을 그대로 따르되 관광객을 승선키 위해

    안전구간과 엔진실만 현대 감각에 맞춘 전통 황포돛배를 제작하였다.

    여주 황포돛배는 전국 최초 목선으로 등록된 선박이다.

     

     


            "황포돛배"를 타는 신륵보트장 가는 곳에 설치한 홍보물

     

    - 출발장소 : 금은모래관광지 황포돛배 나루터

             - 운행시간 : 매일 오전 11:00 - 17:00까지 매시간 정시 운행

                 - 운항코스 : 나루터-신륵사관광지-여주대교-영월루-강월헌-나루터

    - 승선정원 : 45명,  - 소요시간 : 약 30분

    - 휴 무 일 : 매주 월요일, 기타 우천 또는 수위 상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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