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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양(安養) 삼성산(三聖山)
    국내 나들이/산(山)으로 2015. 4. 15. 04:54

    안양(安養) 삼성산(三聖山)

     

    삼성산(三聖山)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과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금천구 일대에 접해 있는 산으로

     

     

     

    조선 성종 때(1484년) 노사신 등이 왕명을 받들어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본떠 저술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금천현 산천조에

     

     

     

    “삼성산은 현동쪽 10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 삼성산재현동십리진산(三聖山在縣東十里鎭山)라고 하였고,

     

     

     

    같은 책 과천현 산천조에 “관악산은 현 서쪽 5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

     

     

     

    - 관악산재현오리진산(冠岳山在縣五里鎭山)라고 하여,

     

     

     

    삼성산은 금천현의 관아가 있던 지금의 서울시 금천구 시흥2동에서 동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금천현의 진산(각 고을을 진호(鎭護) 하는 주산(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이들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산의 유래 또한 설이 구구하다.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정진하였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

     

     

     

    "삼성산(三聖山)"이라 칭했다는 설이 보통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간행된 시흥읍지, 시흥현읍지, 시흥군읍지에는 고려말기에 불교계를 이끌던

     

     

     

    나옹(1320∼1376), 무학(1327∼1405)과 인도승려 지공(?∼1363)이

     

     

     

    이곳 삼성산에 올라가 각기 수도할 자리를 잡고 정진했다는 연고로「삼성산」이라 했다.

     


    삼성산재현동십리무학나옹지공삼석각복정람이거지인삼성산

     

     

     

    (三聖山在縣東十里無學懶翁指空三釋各卜精籃而居之因三聖山)


    이상의 세 유래 중 두번째는 입증할만한 문헌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한결같이 당대의 고명한 세 고승들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는데,

     

     

     

    전자는 삼막사가 창건된 677년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史料)가 없고

     

     

     

    극히 일부의 사사(寺史)에만 그 기록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며,

     

     

     

    후자는 사사가 아닌 읍지, 지리지 등 관찬과 사찬 등의 여러 문헌에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후자의 지공, 나옹, 무학의 삼성설이 가장 믿을 만한 정설로 생각된다.


    산중에는 삼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사, 망월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삼성사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1592) 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와,

     

     

     

    일제 강점기에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일찍이(900)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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