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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향교(長鬐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7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6. 18. 19:03

    장기척화비(長鬐斥和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4호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의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비는 반듯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며,

    비몸의 네 모서리와 윗변의 양끝을 단정히 다듬어 놓았다.

    앞면에는 비문을 새겨 두었는데 내용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양이침범 비전칙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들 자손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이후 같은 해에 일제히 세운 것으로,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되면서

    대부분의 척화비들은 철거되고, 이처럼 몇 기의 비들만이 곳곳에 남아

    옛 역사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이 척화비는 원래는 장기읍성 안에 있었으나, 1951년 장기지서 입구에서 찾아

    면사무소 정문 왼쪽 도로변에 세워뒀다가 1990년 면사무소 정원에 이설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길 99 (읍내리) 장기면행정복지센터

     

     

     

    장기향교(長鬐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7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육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장기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서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었다.

    그후 정조 9년(1785)에 지방 교육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하여

    현감 황익진이 마현행단(현재 장기초등학교 동편)으로 옮겨 지었다.

    1931년 군수 김영수와 이종욱이 향사(鄕士)들과 함께 장기읍성에 있던

    옛 객관 자리에 명륜당과 대성전을 새로 짓고 위패를 옮겨 안치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방경·서극인·이대임·이눌 등이

    향교에 모시고 있던 위패를 용암석굴에 옮겨 놓아 위패만은 무사할 수 있었으며,

    향교를 옮겨 지을 때 덕계 임재화가 대대로 살던 자기 집터를 내놓아

    향교 재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전해진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5성과 송나라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8월 상정일(上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5성 :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 4현 : 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

    * 18현 : 신라 2현(설총, 최치원), 고려 2현(안향, 정몽주),

    조선 14현(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성길 92 (읍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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