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 국보 제7호
1021년(고려 현종 12년)에 봉선홍경사라는 사찰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026년(현종 17년)에 세운 비이다.
이곳은 호남과 한양을 잇는 갈래 길로 교통의 요지였으나, 갈대가 무성한 못이 있고,
사람이 사는 곳과 떨어져 있어 강도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어려웠다.
이에 현종이 불법(佛法)을 펴고 길가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봉선홍경사라는 사찰과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는 숙소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사찰의 이름 앞에 봉선이라 붙인 것은 현종의 부왕(父王) 안종(安宗)의 뜻을 받들어 지었기 때문이다.
최충(崔沖)이 비문을 지었고, 백현례(白玄禮)가 썼다.
비는 거북모양의 받침인 귀부(龜趺)와 이무기를 조각한 덮개돌인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址臺石)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어룡(魚龍)의 머리가 정면을 보지 않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고려시대의 조각과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3길 77-48(대홍리)
봉선홍경사 갈기(奉先弘慶寺 碣記)
1026년(고려 현종17) 고려 현종(顯宗)의 명으로 세운 비석으로, 봉선홍경사의 건립 경위를 기록하였다.
최충(崔沖)이 글을 짓고 백현례(白玄禮)가 글씨를 썼다. 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디 사찰을 건립하는 이유는 불법(佛法)을 전파하기 위해서지만 나그네의 숙소로 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직산현(지금의 충남 천안) 성환역 북쪽은 교통의 요지였으나 여관이 없고 강도가 출몰하여 사람들이 다니기 어려웠다.
현종의 부친 안종(安宗)은 법화경(法華經)을 읽다가 먼 길을 가는 나그네들이
화성(化城)이라는 환상의 도시에서 쉬어갔다는 이야기에서 감명을 받고, 나그네들이 쉴 곳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종은 부친의 뜻을 잇고자 승려 형긍(泂兢)을 시켜 이곳에 사찰을 세우게 했다.
1016년 형긍은 승려 득총(得聰), 장림(藏琳)과 함께 공사에 착수했고, 현종의 명을 받은 강민첨(姜民瞻), 김맹(金猛)이 그들을 도왔다.
농사철을 피하고 국고의 지출을 줄여 백성과 나라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했다.
마침내 1021년 봉선홍경사가 완공되었다. 200여 간(間) 규모의 거대한 사찰이었다.
‘봉선’은 선조를 받든다는 말로, 현종이 부친 안종의 뜻을 받들어 이 사찰을 세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홍경’은 경사를 널리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어서 나그네의 숙소로 사용할 건물의 공사에 착수하여 80간(間) 규모의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을 완공하였다.
‘광통연화’는 인연을 넓히고 교화를 두루 베푼다는 말로, 역시 여러 사람을 위한다는 뜻이다.
이곳에 양식과 마초를 쌓아두어 나그네를 대접하는 한편, 어려운 사람을 구제할 밑천으로 삼았다.
최충은 이 글에서 부친의 뜻을 잇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베푼 현종을 찬양하는 한편,
사찰과 숙소가 오래 유지되도록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