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첩보부대 영흥도전적비(海軍諜報部隊 靈興島戰績碑)
해군영흥도전적비
해군 영흥도지구 전투 전사자(1950년 8월 13일 ~ 1950년 9월 15일)
중위 임병래, 박동진, 홍시욱, 이삼재, 김재경, 홍희표, 탁영각, 김용추
대한청년단방위대원(1950년 9월 14일 전사)
강태원, 강대원, 박준석, 김상식, 김성옥, 노재후
해군 영흥도전적비 건립개요
건립기관 : 해군본부, 집행부대 : 해군 제9513부대,
설계자 : 이일영(남산미술원), 시공자 : 원풍종합건설(주)
글 : 정우용, 비명글씨 : 청람 전도진, 제막 : 1992년 12월 2일
해군 영흥도 전적비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괴의 불법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1950년 9월 15일 세기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로써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여 압록강까지 승승장구 북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한국 해군 기동함대(701,702,704,513,301,307,309,310,313함)의
승조장병으로 편성한 육전대가 함포 지원으로 적전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동년 8월 18일 덕적도를, 8월 20일 영흥도를 차례로 탈환하고,
8월 23일부터는 LST에 탑재하고 있던 해군 이동기지 육전대가 상륙하여
영흥도 청년방위대와 함께 이 섬을 사수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고 상륙 기동부대의 안전항행을 보장하였다.
한편 동년 8월 24일 영흥도를 거점으로 작전을 개시한 한국 해군첩보부대는
9월 1일 미 극동군에서 파견한 첩보팀과 긴밀한 협조하에 상륙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적이 장악 중인 지역에서 용감하게 첩보활동을 전개하여
상륙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작전기간 중 9월 13일 북괴군은 대대급 병력을 영흥도에 투입하여
일시 점령하였으나 용감무쌍한 우리 해군 장병들과 청년방위대원들이
703함의 필사적인 근접 함포 지원 아래 적을 격퇴하였다.
여기에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결정적인 공헌을 한 해군 장병 및
현지 청년방위대의 빛나는 무훈과 도민들의 드높은 애국심을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삼가 비를 세운다.
1992년 12월 2일
해군참모총장
해군첩보부대 영흥도전적비(海軍諜報部隊 靈興島戰績碑)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4-2-9
관리자 :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인천광역시지부
1950년 6월 25일 북괴군의 불법 남침으로 전개된 한국전쟁은
9.15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에 앞서 해군첩보부대는
영흥도 첩보공작(Operation X-ray)을 성공시킴으로써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해군첩보부대(부대장 소령 함명수)는 동년 8월 24일 영흥도를 거점으로 상륙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북괴군이 장악중인 지역에서 첩보공작을 수행하였으며,
9월 1일 미 극동 군사령부 첩보대(미 정보장교 Eugene F Clark)에
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9월 13일 북괴군 대대급 병력이 영흥도를 공격해옴에 따라 해군첩보부대원들과
청년방위대원들이 703호함(함장 중령 이성호)의 함포지원으로 적을 격퇴시켰다.
해군 영흥도전적비(海軍 靈興島戰績碑)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4-2-9
소재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 산314
관리자 : 해군 제2함대사령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괴군이 38선 전역과 동해안으로
불법남침을 개시함에 따라 전개된 한국전쟁은 동년 8월 유엔군과 한국군이
낙동강 전선에 강력한 방어진을 형성함으로써 전황이 교착되어 있었다.
이때 한국 해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인천 접근로의 주요 도서를 탈환하여
목표지역의 적정(敵情)과 지형 등 정보를 수집하고,
상륙기동부대의 안전항행을 보장하기 위한 적전 상륙작전(일명 李作戰)을 펼쳤다.
한국 기동함대의 702(기함, 함장 중령 이희정), 701(함장 중령 최용남), 701(함장 중령 최효용),
513(정장 소령 박경철), 301(정장 소령 김상길), 307(정장 소령 백운기), 309(정장 소령 김남교),
310(정장 소령 김동섭), 313(정장 소령 이종철) 등의 함정 승조장병으로 편성한
육전대(중대장 702함 중위 장근섭)가 함포지원하에 적전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동년 8월 18일 덕적도를, 8월 20일 영흥도를 차례로 탈환하고,
8월 23일부터는 LST에 탑재하고 있던 해군 이동기지 육전대(대장 준위 한봉규)가 상륙하여
영흥도 도민들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청년방위대와 함께 이 섬을 사수하였다.
한편 동년 8월 24일 영흥도를 거점으로 작전을 개시한 한국 해군첩보부대(부대장 소령 함명수)는
9월 1일 미 극동군에서 파견한 첩보팀(미군 해군 크라크 대위)과 긴밀한 협조하에
상륙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적이 장악 중인 지역에서 용감하게 첩보활동을 전개하여
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작전 기간 중 9월 13일 북괴군은 대대급 병력을 영흥도에 투입하여 일시 점령하였으나,
용감무쌍한 우리 해군장병들과 청년방위대원들이 703함(함장 중령 이성호)의
필사적인 근접 함포지원 아래 적을 격퇴하였다.
이 작전은 세기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전으로서
한국 해군이 단독으로 감행한 적전 상륙작전이었으며,
이 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인천 접근 수로의 측방위협을 제거하여
상륙기동부대의 안전항행을 보장하고 적정을 포함한 완벽한 상륙정보를 제공하여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