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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초상(宋時烈 肖像) - 국보 제239호

앵봉(鶯峰) 2020. 9. 13. 04:26

작가미상 / 조선 17~18세기 / 비단에 채색 / 89.7cm × 67.6cm

 

송시열 초상(宋時烈 肖像) - 국보 제239호

 

송시열(1607~1689)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문신이자 유학자로서,

죽은 뒤 그를 추모하여 받드는 수많은 영당 및 서원이 건립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위패 봉안만이 아니라 영정을 봉안하였던

영당 및 사우(서원부속)만 하여도 20여 개소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송시열상은 복건(幞巾)에 유복(儒服) 차림을 한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반신상이다.

화상의 오른쪽 상단에는 3984년(서기 1651년)에 송시열이 지은 제시(題詩)가 적혀 있다.

위쪽에는 4111년(서기 1778년(정조 2년)) 정조의 어제찬문이 씌어 있다.

이 초상화의 제작 시기를 자제시기(自題詩紀)에 근거하여 간단히

3984년(서기 1651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는 '우암연보(尤庵年譜)'에 기록된 송시열의 생시도사본상(生時圖寫本像) 중 하나인

년 상(像)에 대한 기술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얼굴 모습이 45세가 아닌 노년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어제찬문이 씌어진 정조 연간초에 이모(移模)된 것으로 생각되며

그 위에 송시열이 45세 때 지은 자제시를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법은 거의 음영법을 사용하지 않고 갈색 선으로 안모의 외곽과 주름살을 표현하였다.

숱 많은 눈썹, 강한 눈매, 붉은 입술은 엄정하면서도 과격한 그의 성품의 일단을 말해준다.

그 위에 검은 복건과 백색 유복, 간결한 옷주름 처리의 검은 선이 빚어내는 흑백 대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유학자로서의 송시열의 풍도에 쉽게 접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