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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승비(多富洞 戰勝碑)

앵봉(鶯峰) 2020. 10. 30. 04:14

다부동 전승비

MEMORIAL OF THE "BOWLING ALLEY" VICTORY

TABUDONG, AUGUST 1950

 

다부원(多富院)에서

 

한달 농성 끝에 나와보는 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彼我攻防(피아공방)의 砲火(포화)가 한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多富院은 이렇게도 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自由의 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軍馬의 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戰士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多富院

진실로 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多富院은 죽은 者도 산 者도 다 함께 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을해년 조지훈 시를 류영희 적다

 

전우야 잘 자라

유 호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학도병의 일기

이 우 근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명은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지금 내 곁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 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다부동 전승비(多富洞 戰勝碑)

 

6.25 한국전쟁 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미 보병 제27연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71년 12월 15일,

경상북도와 제2군사령부가 경북 칠곡군 가산면 금화리에 다부동 전승비를 세웠다.

 

이 전승비는 미 보병 제27연대(존 에이치 마이캘리스 대령 지휘) 장병들의

찬연한 무훈과 공훈을 길이 남기기 위한 기념비이다.

1950년 8월 이곳에서 미 제27연대는 한국군 제1사단 장병과 더불어

침략자들을 6.25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무찔렀으며,

대한민국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이 남긴 탁월한 지휘력 및 결단성과

돌격정신을 이 겨레와 함께 영구히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