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전승비(多富洞 戰勝碑)
다부동 전승비
MEMORIAL OF THE "BOWLING ALLEY" VICTORY
TABUDONG, AUGUST 1950
다부원(多富院)에서
한달 농성 끝에 나와보는 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彼我攻防(피아공방)의 砲火(포화)가 한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多富院은 이렇게도 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自由의 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軍馬의 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戰士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多富院
진실로 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多富院은 죽은 者도 산 者도 다 함께 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을해년 조지훈 시를 류영희 적다
전우야 잘 자라
유 호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학도병의 일기
이 우 근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명은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지금 내 곁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 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다부동 전승비(多富洞 戰勝碑)
6.25 한국전쟁 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미 보병 제27연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71년 12월 15일,
경상북도와 제2군사령부가 경북 칠곡군 가산면 금화리에 다부동 전승비를 세웠다.
이 전승비는 미 보병 제27연대(존 에이치 마이캘리스 대령 지휘) 장병들의
찬연한 무훈과 공훈을 길이 남기기 위한 기념비이다.
1950년 8월 이곳에서 미 제27연대는 한국군 제1사단 장병과 더불어
침략자들을 6.25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무찔렀으며,
대한민국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이 남긴 탁월한 지휘력 및 결단성과
돌격정신을 이 겨레와 함께 영구히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