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충청남도 기념물 – 이동녕 선생 생가지

앵봉(鶯峰) 2021. 12. 3. 20:09

이동녕 선생 상

 

 

 

이동녕 선생 생가 주련 문(柱聯文)

 

주련은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으로

좋은 글귀나 남에게 자랑할 내용을 붓글씨로 써서 붙이거나

그 내용을 얇은 판자에 새겨 걸기도 함.

 

應天上之三光 응천상지삼광 – 하늘의 세 가지(해, 달, 별) 빛에 응하여

備人間之五福 비인간지오복 – 인간 세계에 오복을 갖춘다.

一勤天下無難(事) 일근천하무난(사) - 한결같이 근면하게 살아가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고

百忍堂中有泰(和) 백인당중유태(화) - 백번을 참는 가정에 평화가 있다.

億千年去山(猶)碧 억천년거산(유)벽 – 억 천년이 지나도 산은 그대로 푸르고

十五夜來月(復)圓 십오야래월(복)원 – 달은 보름밤이 되면 다시 둥글어진다.

 

* (   ) 안의 한자는 생략된 것임.

 

 

 

이동녕 선생이 어린 시절에 공부하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천안시 보호수 은행나무

 

 

 

山溜穿石(산류천석) 휘호석(揮毫石)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임.

 

 

 

석오 이동녕 선생 흉상

 

 

 

大義(대의) -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큰 도리

 

 
 

동포여! 우리나라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며,

굳건한 독립을 되찾는 데는 하나는 내 동지들의 단결이요,

둘은 우리 동포들의 단결이며, 셋은 모든 대한 민족의 대동 단결함에 있으니,

오로지 뭉치면 살고 길이 열릴 것이요, 흩어지면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석오 이동녕 선생님 1920년 3. 1절 기념사에서 -

 
 
 

석오 이동녕기념관

 

 

 

이동녕 생가에서 본 흑성산(黑城山, 519m)

 

 
 

충청남도 기념물 – 이동녕 선생 생가지(李東寧 先生 生家址)

 

이동녕 선생 생가지는 독립운동가인 이동녕이 태어난 집터이다.

이동녕은 본관이 연안이고, 1869년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독립협회와 상동청년회 활동에 참여하여 구국운동을 펼쳤고,

1906년 이상설 등과 함께 만주 지역 최초의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우고 운영하였다.

1907년 안창호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였다.

1911년 서간도에 세운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초대 교장을 맡아

독립군을 교육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에 선임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후 임시정부 내무총장, 임시의정원 의장, 국무회의 주석 등을 거치면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1940년 3월 13일 중국 기강(綦江)에서 지병이던 폐렴으로 눈을 감았다.

1948년 유해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동녕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하였다.

집의 구조를 보면 ㄱ자형의 안채는 3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한 칸씩 방이 있고, 그 앞으로 대문간채가 있는 형태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8 (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