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仁村 金性洙 先生 銅像)
銅像(동상)
高(고, 높이) 3.424m
金景承 彫刻(김경승 조각)
閔福鎭 助手(민복진 조수)
銅像建立文(동상건립문)
校友會長 李丙壽 撰(교우회장 이병수 찬)
財團 主務理事 李活 書(재단 주무이사 이활 서)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 건립문(仁村 金性洙 先生 銅像 建立文)
민족 자립의 대본(大本)이 첫째 교육에 있음을 깨닫고 일제의 억압과 싸워가며
이 사업을 완수한 이는 곧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다.
선생의 사업이 허다(許多)하지만 특히 교육은 그가 지상 사명으로 삼아
물심을 기울여 일생을 여기에 바쳤던 것이다.
선생은 본시 고창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마치고 돌아오자
단기 4248년(1915년) 중앙학교를 맡아 일익 확장(日益擴張),
다시 그 경영을 반석 위에 놓고자 4262년(1929년)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창설하였다.
그 후 2년에 걸친 구미 유람(歐美遊覽)에서 또 깊이 느낀 바 있어
4265년(1932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이어받아
전기(前記) 재단 경영 밑에 두고 안암동 넓은 지역을 택하여 괄목할 시설을 이룩하니
영재 육성과 아울러 민족문화 배양의 일대 요람(一大搖籃)들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갈망(渴望)의 해방을 맞이하자 익(翌) 4279년(1946년) 드디어 보성전문학교를 개편하여
고려대학교로 승격시키고 한층 더 내용을 확충하니 그의 포부(抱負)는 실로 원대(遠大)하였다.
아! 선생은 4288년(1955년) 아깝게도 65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애국애족의 발로에서 교육사업에 진췌(盡瘁)한 그 숭고한 정신,
치밀한 경영, 거룩한 공헌은 길이 후세의 사표가 되고 남음이 있으리라.
고대 교우가 중심이 되어 본교 관계 유지들과 함께
선생의 높은 덕행을 추모 기념하고자 모교 교정에 이 동상을 모신 것이다.
단기 4292년(1959년) 5월 5일 건립
고려대학교 교우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