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석(文人石) - 고려대학교 박물관
문인석(文人石) - 고려대학교 박물관
조선시대 석물을 대표하는 것은 문인석이다.
각종 문헌자료에 석인(石人)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부분 문인석을 의미한다.
문인석은 시기마다 양식과 규모가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면서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문인석은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왕릉(王陵)이나 원(園), 시대부 묘(士大夫 墓) 등
능묘 앞 좌우에 능의 주인을 지키는 의미로 세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이 문인석은 15~16세기 작품들로 조선 전반기 석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관복을 하였을 때 손에 드는 手板)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이 문인석은 북두공복(北斗公服-관리의 평상복) 차림으로 허리띠 아래에
수평의 옷 주름이 표현된 것에서 15세기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세조 광릉(1468년)의 문인석과 유사하다.
이 문인석은 크고 두꺼워진 홀(笏)을 얼굴에 붙이고 있는 것과
공복의 소매가 2중을 하고 있는 점에서 15세기 것과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16세기 전반기의 문인석의 특징은 북두공복의 문인석이 계속 조성되고 있지만,
조각적 기법과 장식적 표현에 있어 이전 시기보다
세련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문인석이 많이 등장한다.
16세기의 문인석은 양감이 풍부하며 코가 매우 돌출되어 있는데 반해
얼굴이 다소 평면화 되어 있고 사실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16세기보다는 17세기 작품들과 관계가 있다.
이 문인석은 15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전 시기 문인석보다 어깨가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박과 하박이 직각을 이루고 양손이 수평으로 만나는 것 역시
15세기 후반 16세기 초의 양식적 특징이다.
15세기 전반은 인물상으로 보기에는 과장된 조각기법을 보이는 반면
15세기 후반의 문인석은 인체의 비례가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
안면의 눈매가 장승의 눈매가 아닌 사람의 눈매로 바뀌었다.
옷자락 역시 홀을 잡고 있는 의복곡선의 흐름뿐 아니라
홀을 잡고 있는 양손의 위치 및 손가락까지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