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화교 위서방지묘(從軍 華僑 魏緖舫之墓)
從軍 華僑 魏緖舫之墓(종군 화교 위서방지묘)
신분 : 종군자
소속 : 1사단 수색대
사망일자 : 1989. 6. 25.
안장일자 : 1990. 3. 20.
묘역 : 국립서을현충원 12-1-null
故 魏緖舫(위서방, 웨이시팡) 선생은 1923년 2월 10일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인 중국 안둥성安東省)
안둥시(安東市)에서 태어나 신의주에서 살다가
1945년 안둥성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국부군 대위(大尉)로 근무했다.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자유중국이 본토를 철수하여 대만으로 퇴각할 때
신의주에 귀향하여 평양 인근 장산탄광(長山炭鑛) 광부로 취업했다.
화교 청년들과 함께 한중반공애국단(韓中反共愛國團)을 조직해
1950년 10월 국군의 평양 입성을 도왔고
국군 15연대의 중국인 특별수색대를 이끌었다.
화교 47명으로 이뤄진 이 부대는 1950년 12월 24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서 중공군 4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함으로써 중공군이 처음 38선 이남까지 침략하였다는 증거를
UN군사령부에 보고하여 전 세계에 알리는 큰 전과를 올렸으며
그 후 과천지구 전투를 비롯해 서울 재탈환작전과 각 지구 전투에서
중국인 특별수색단장으로 그 공적이 지대하여
대통령께서 금성화랑무공훈장을 하사하였다.
위서방은 전쟁이 끝난 뒤 한의사가 되어 강원도 강릉에서 극빈자를 무료 진료하고
장학사업에 앞장서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쓰다가 1989년 6월 25일 별세했다.
정부는 그해 12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990년 3월 20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