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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서(祥瑞)로운 서설(瑞雪)이 내린 "화성 팔달문(華城 八達門)"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0. 1. 12. 06:14

    상서(祥瑞)로운 서설(瑞雪)이 내린 "화성 팔달문(華城 八達門)"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에 위치한 팔달문(八達門)은 수원 화성(華城)의 남쪽문으로

     

    1796년(정조 20)에 완공되었는데,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八達山)에서 따 왔다. 

     

    팔달문(八達山)은 화강암으로 된 석축에 홍예문(虹霓門)을 내고,

     

    그 위에 여장(女墻)을 돌린 다음 2층 누각(樓閣)을 세웠다. 

     

    누각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多包式)이며,

     

    쇠서의 끝이 강하게 위로 솟아 있고 살미첨차의 끝이 장식화되어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성문의 좌우에는 적대(敵臺)를 설치하여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했으나 도로개설 때 성벽이 헐리어 현재는 없어졌다.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형의 옹성(甕城)을 축조했는데

     

    문을 둘러싸고 있는 반월형(半月形) 옹성은 팔달문의 특징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동대문(興仁之門:흥인지문)에서만 볼 수 있고, 

     

    옹성(甕城)의 윗부분의 중앙부에는 통행할 수 있도록 용도(勇道)를 내었고,

     

    양 옆면에 총안(銃眼)과 현안(縣眼)을 둔 철형여장(凸形女墻)을 쌓았다.

     

    옹성의 남쪽 중앙에는 성문과 맞추어 홍예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5개의 원형구멍을 낸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으며 안쪽으로 앞면·옆면이 각각 1칸인 누각을 세웠다.

     

    이 성문은 북쪽문인 장안문(長安門)과 형태가 같으며, 규모와 건축수법 등이 서울의 숭례문(崇禮門)과 비슷하다.

     

    화성의 성문은 당시 다른 성문의 장점만을 취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문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것이었다.

     

    또한 화성의 준공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당시 팔달문의 규모와

     

    여기에 사용한 목재·석재·기와·전돌의 수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 되어 있어 중요한 자료이며 화성의 여러 건축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발달된 조선 후기의 성문 건축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는 문화재이다.

     

    팔달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1964년 9월 3일 보물 제 402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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