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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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9. 24. 19:08
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전남 강진 다산초당 유배시절 정약용이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전하고픈 당부의 말을 적은 서첩으로 몸가짐, 교우 및 친족관계, 학문하는 자세 등 자손에게 바라는 삶의 태도가 적혀있다. * 하피첩(노을:霞/치마:帔/문서:帖) : ‘하피’는 옛날 예복의 하나(붉은 노을빛 치마)로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귀양하던 때 부인이 보내준 치마로 만든 서첩. 자신의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적은 편지글이 정약용의 필체로 적혀 있음. 제작시기 : 1810년(순조 10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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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백악, ‘백악춘효(白岳春曉)’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29. 04:09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백악, ‘백악춘효(白岳春曉)’ 빼앗긴 궁궐의 봄 20세기 초 서화계의 거장이었던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1915년 여름에 그린 〈백악춘효(白岳春 曉)〉는 백악과 경복궁 일대의 모습을 담은 대표적인 그림이다. ‘백악의 봄날 새벽’이라는 제목처럼 버드나무와 같이 푸른 잎의 나무가 궁내에 무성하고 경복궁 전각의 처마와 용마루 사이로 새벽안개가 낮게 깔려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자연이 주는 활기와 다르게 인적 없는 경복궁과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모습은 고요와 적막이 가득하다. 화면 상단에 마치 거대한 기념비처럼 우뚝 솟아 있는 백악은 조선왕조의 도읍, 한양의 주산(主山)으로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화면 중앙의 광화문은 엄밀한 투시도법을 적용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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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가족도(家族圖)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25. 04:05
국가등록문화재, 가족도(家族圖) 배운성(裵雲成, 1900~1978)은 우리나라 최초로 1920년대 독일 유학을 떠난 화가로 1930년대 후반 파리로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40년 전시 체제에서 작품을 가져오지 못하고 귀국하였다가 월북한 작가이다. 가족도는 한옥 마당에 군집한 대가족이 아기를 안고 앉아있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배열되어있는 작품으로 근대기 가족사진을 연상시키며, 등장인물 17명이 직립자세로 정면상을 보이고 있으나 몇 명의 경우 움직임이 내포되어 있어 근대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서명은 없고,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소장가가 프랑스에서 배운성의 그림을 일괄구입하여 국내로 들여와 소개하였다. 한국미술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형 가족초상화로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 베를린과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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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향한 기원(祈願), 기린기(麒麟旗)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22. 04:06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향한 기원(祈願), 기린기(麒麟旗) 조선시대 왕세자, 왕세손이 행차할 때 의장군이 들었던 깃발이다. 기린은 예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어질어서 살아있는 벌레를 밟지 않으며 돋아나는 풀을 꺾지 않는 등 성군(聖君)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다. 왕실에서는 기린을 왕위 계승자인 세자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기린 도상은 말, 사슴,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기린기의 기린 도상은 조선시대 왕실 유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이다. 노루 몸통에 용의 얼굴과 비늘을 가졌고, 소의 꼬리와 유사하지만 말발굽이 있으며, 뿔과 갈기가 있다. 이러한 모습은 1892년 고종을 위한 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進饌儀軌)』 기린기 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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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울주 언양읍성 (蔚州 彦陽邑城)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20. 04:03
언양읍성의 남문 영화루(映花樓) 언양읍지(彦陽邑誌)에 의하면 언양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은 1800년대 초반 진남루(鎭南樓)에서 영화루(映花樓)로 이름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으며, 1900년대 초반 최종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구조이며 성벽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 있는 개거식(開据式)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석은 자연석 위에 둥글게 다듬은 높은 주초를 세웠고, 기둥머리 부분에는 날개 모양의 익공(翼工) 2개를 포개놓은 이익공을 두었으며,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영화루 앞에는 효과적으로 방어하려고 성문을 둥글게 감싸 안은 반원형의 옹성(甕城)을 두었다. 사적, 울주 언양읍성(蔚州 彦陽邑城) 예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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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厄)을 막아주는 아름다운 장식, 잡상(雜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18. 04:04
액(厄)을 막아주는 아름다운 장식, 잡상(雜像) 궁과 능에 가보면 중요한 건물의 지붕선을 따라 다양한 장식기와가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 전각 지붕 추녀마루 위에 나열된 장식기와를 잡상(雜像)이라고 한다. 잡상의 수는 건물 규모나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르다. 목조 건물의 화재를 예방하고 액을 막아주는 의미가 담겼다고 전해지는데 건물의 위엄 있는 분위기를 담당하기도 한다. 유몽인(柳夢寅)이 저술한 한국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譚)』에는 잡상이 서유기의 등장인물인 대당사부(삼장법사),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을 따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또한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는 용에게 ‘구룡’이라는 아홉 자식이 있다는 이야기에서 따와 잡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존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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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淸道邑城) - 경상북도 기념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15. 04:08
청도 선정비군(淸道 善政碑群) 북문 공북루(拱北樓) 서문 무회루(撫懷樓) 청도읍성(淸道邑城) - 경상북도 기념물 읍성 면적 : 6,570㎡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면이 사각형 형태이다. 규모를 살피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있어 잘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성벽은 길이 1,570보(약 1.9㎞), 높이 5척 5촌(약 1.65m)이었다고 한다.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 돌로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섞어 가면서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지금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성벽은 동문지(東門址) 부근으로 성벽의 기초부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이는 대략 1m 정도이고 길이는 10m 정도이다. 성곽의 축조연대는 1590년(선조 2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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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26. 04:05
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398년 태조 7년에 창건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시 병화로 불탄 것을 다시 재건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모시고 그 양편에 사성과 공자의 열 제자인 십철 즉,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자로, 자유, 자하를 비롯하여 육현을 배향하였다. 동쪽에 있는 동무에는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을 서쪽에 있는 서무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흔,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 모두 18명의 위패를 모셔놓고 옥천의 유림들이 매년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2월과 8월 첫 번째 정일(丁日)에 석전제(釋奠祭)를 올린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8길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