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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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거(萬石渠) - 수원 만석공원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1. 10. 29. 20:18
이병희 선생 상(李秉禧 先生 像) 이병희(李秉禧) 약력 1926 8. 1 경기도 용인 출생, 1941~1946 수원 삼일중학교 졸업, 1948~1949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1953~1957 경희대학교 정외과 졸업, 1963~1996 제6, 7, 8, 9.10,13,15대 국회의원(민선 7선), 1967~1968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 1967~1972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의장 1971~1975 정무담당 무임소장관(제1무임소장관), 1971~1980 한. 일 의원연맹 창설 및 간사장, 1963~1967 경기도청 유치 추진위원장, 1954~ 대한 농구협회장, 1972~1988 아세아 농구연맹 회장 이병희 선생의 생애를 기린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선인도 악인도 되지 않는다. 수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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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 - 보물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1. 9. 11. 19:22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 - 보물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 탑비는 고려말 승려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 1307-139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천희는 13살의 나이에 불교계에 들어섰고,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중국 유학을 결심하여 1364년(공민왕 24)부터 2년간 원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는 귀국 후 국사(國師)에 봉해져 부석사를 보수하는 등 고려 말에 활약하였다. 천희가 76세가 되는 우왕(禑王) 8년(1382)에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入寂)하자 고려 우왕이 진각국사(眞覺國寺)라는 시호를 내려줬다. 진각(眞覺)은 "진실로 깨닮음"이란 뜻이다. 이색(李穡, 1328~1396)이 비석의 글을 짓고, 승려 혜잠(惠岑)이 글씨를 새겨 우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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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뫼 제사유적지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1. 6. 26. 21:15
꽃뫼에 얽힌 슬픈 전설 화서역 근처에 있는 야트막한 산의 이름이 꽃뫼(花山)입니다. 옛날 병이 든 아버지를 모시며 사는 효심이 깊은 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머슴이 이 여인을 범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충격으로 여인이 산에서 목을 매달고 말았다고 합니다. 몇 해가 지난 후, 여인이 묻힌 자리에서는 꽃나무가 무성히 자랐는데, 사람들이 꽃나무를 보며 그 안타까운 일을 떠올리고 이 산을 '꽃뫼'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이곳이 삐죽하게 튀어나온 지형인 ‘곶’에서 비롯되어 ‘꽃뫼’라고 불렀다고도 합니다. 수원시 향토유적, 꽃뫼 제사 유적지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있는 유적으로 1997년 발굴 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구멍 무늬 토기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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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비(遲遲臺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0. 7. 15. 04:09
지지대비(遲遲臺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지지대비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1807년(순조 7) 화성 어사 신현(申絢)의 건의로 세워졌다. 정조대왕은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 현재 화성시 융릉)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무덤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언제나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무덤을 뒤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 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 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비문은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篩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지지대고개의 유래 정조는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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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급수탑(水原驛 給水塔) - 등록문화재 제780호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0. 7. 12. 21:28
수원역 급수탑(水原驛 給水塔) - 등록문화재 제780호 수원역 급수탑은 1930년대 국철(國鐵)인 광궤철도의 급수탑과 사철(私鐵)인 협궤철도의 급수탑 2기가 동일한 부지 내 현존하는 희귀한 사례로, 국철과 사철의 급수탑 변화양상과 변천사를 보여주는 철도유산으로 가치가 높다. 급수탑은 높이 18.1m 콘크리트조(造) 1기와 높이 7.9m 붉은 벽돌조(造) 1기다. 벽돌조 급수탑은 국내에서 유일한 ‘협궤선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이었다. 철도역사(鐵道驛舍)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는 시설물이다. 1960~70년대 증기기관차 운행이 종료되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레일 거리가 1,435mm(표준)보다 넓은 철도를 광궤철도, 좁은 것을 협궤철도(762mm)라 부른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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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교 표석(南昌橋 標石) -수원시향토유적 제16호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0. 6. 30. 23:38
남창교 표석(南昌橋 標石) -수원시향토유적 제16호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 109―95번지 앞 도로에 있는 표석이다. 팔달산 영산 약수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샛도랑(남창하천)과 팔달로가 만나는 지점에 남창교가 있었다. 원래 돌다리였던 연유로 남창교를 '샛도랑 돌다리'라고도 불렀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다리는 없어지고 '南昌橋(남창교)'라 쓰여진 표석만 남아있다. ‘수원 지명총람’을 보면 남창동(南昌洞)은 “1789년 수원부의 읍치가 옮겨오기 전 이 지역은 수원부(水原府)에 속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1789년(정조 13) 9월 수원부의 읍치를 팔달산(八達山) 동쪽 기슭으로 옮기고 1796년 화성 신도시를 건설한 후 팔달산 주변 지역을 남부와 북부로 나누었다. 이때 이곳은 남부에 속하였다. ‘수원군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