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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비(遲遲臺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0. 7. 15. 04:09
지지대비(遲遲臺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지지대비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1807년(순조 7) 화성 어사 신현(申絢)의 건의로 세워졌다.
정조대왕은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 현재 화성시 융릉)에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무덤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언제나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무덤을 뒤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 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 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비문은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篩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지지대고개의 유래
정조는 뒤주에 걷혀 비통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隆陵)을 자주 참배하고는 했다.
심지어 도읍지도 수원으로 옮기려는 천도 계획도 가졌었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에 참배하러 갈 때 이 고개에 오르면 능이 멀리 바라보이는데
행렬이 늦어지자 "왜 이렇게 더디느냐(遲遲:더딜 지)"라고 하면서 역정을 내고는 하였다.
참배를 마치고 도성으로 돌아갈 때는 으례 이곳에서 행렬을 멈추게 하고
뒤돌아서서 융릉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임금이 행차가 자꾸 늦어졌으므로
「지지대고개」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지대고개 위에는 정조의 참배 행렬을 기념하여 순조 때에 세운 지지대비가 있다.
정조는 그가 죽은 뒤에 부친의 능 옆에 자신의 능(건릉, 健陵)을 쓰게 한 것만 보아도
그의 효심이 얼마나 지극한지 잘 알 수 있다.
지지대의 옛 지명
조선 정조 이전까지 이 지역은 사근현(沙近峴)이라고 불렀다.
『해동지도』에도 사근현으로 나와 있다.
한편으로 『팔도군현지도』에서는 그 자리에 사근현 대신에 '미륵당(彌勒堂)'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미륵당은 지지대 고개 정상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하여 정조 때 '미륵현'으로 부르다가 이후에 다시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 47-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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