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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수원순교성지 "북수동성당(北水洞聖堂)"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0. 5. 9. 18:17

     천주교 수원순교성지 "북수동성당(北水洞聖堂)"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316번지 천주교 수원북수동성당은 수원의 순교성지(殉敎聖地)이다.

    수원 지방의 순교자들은 천주교 제8대 조선교구장인 뮈델(Journal de Mgr. Mutel:閔德孝)주교의 "치명일기"에 의하면

    33명 이상이고, 병인박해(丙寅迫害:1866년,고종 3년) 순교자 증언록에 나오는 순교자만 해도 64명이다.

    이들 중 중복되지 않고 순수하게 기록에 남은 병인박해 순교자가 77명,

    그리고 1817년 샘골의 순교자 이용빈을 합쳐서 최대 78명이다.

    순교 형태도 옥사, 장하치명, 백지사, 참수, 교수형 등 다양하다.

    2000년 대희년에 수원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는 수원 화성의 중심인

    북수동 성당(구 수원 성당)을 수원 화성에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78위의 순교자들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선포하였다.

     북수동 성당은 수원 시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본당이며,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다 치명한 중영(中營, 摠理營)과 일부 겹쳐진다.

    수원 지역에는 1801년 이전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1801년 신유박해를 계기로

     서울, 광주, 내포 등지로부터 신자들이 숨어들어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병인박해 때 집중적으로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수원의 순교지는 북수동 성당 자리가 포함된 중영, 이아(貳衙, 화청관), 감옥, 동남각루, 남암문,

     팔달문(남문) 밖 장터, 장안문(북문) 밖 장터 등 7~8군데로 확인되고 있고

    그 외에도 사형터(화령전과 화서문 사이), 종로 사거리,

    동장대(군사 훈련장)에서도 공개 처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04년부터는 남수리 황학정 정자와 그 대지 800평을 사들여 공소 강당과 화양학교를 개설하여,

    남녀 아동 200여 명을 교육하다가 1906년 북수리(현 북수동 성당 자리)의

    세칭 팔부자집이라 불리운 기와집 두 채와 행랑채를 매수하여 본당 창설 기지를 삼았다.
    1930년 폴리(Polly, 沈應榮, 1884~1950, 데시데라토) 신부가 부임하고 나서부터

    재임 18년간 수원의 천주교회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33년에 심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원조와 그의 모친이 삯바느질로 모아서 보내 준 돈으로

    기와집 성당을 헐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고딕식 성당(75평)을 신축하였다.
    1934년 학술 강습회 소화학원을 개설하였고, 해방 후 1946년 소화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1976년 구식의 석조 사제관을 헐고 다목적 사제관을 다시 건립하고,

    1979년 4월 5일에는 40년 묵은 옛 고딕 성당을 철거하고 연건평 236평의

     주교관(主敎冠) 모양으로 된 새 성당을 준공 축성하였다.


    (자료출처: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http://paxkorea.kr/ )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품은 수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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