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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영신대종사사리탑(田岡永信大宗師 舍利塔)국내 나들이/탑(塔) 2015. 1. 11. 05:07
전강영신대종사 사리탑(田岡永信大宗師 舍利塔)
이 사리탑(舍利塔)은 용주사(龍珠寺)의 정신적 지주이자,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2~1946) 선사(禪師)의 법맥을 이어
불조(佛祖)의 혜명(慧明)을 밝히신 한국불교의 큰 스승인 전강 영신(田岡 永信) 선사(禪師)의 부도탑으로
2005년 선사의 열반(涅槃) 제30주기를 맞아 사부대중의 뜻을 모아 수행과 위덕을 기리는 사리탑(舍利塔)이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3-4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 =
전강 대종사(田岡 大宗師)
전강 대종사(田岡 大宗師,1898~1975)는 현대 한국의 대표적 고승으로, 스님의 속성은 정(鄭)씨이며,
전남 곡성출신으로 부친은 해룡(海龍), 모친은 황계수(黃桂秀)로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화상(霽山和尙)을 은사로,
응해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출가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들어가 제산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고,
이후 예산 보덕사(報德寺), 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행에 전념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 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며, 특히 100일 동안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스님은 23세가 되던 1921년 드디어 크게 깨달은 후 오도송(悟道頌)을 남겼으며,
이후 당대의 선백들을 찾아가 인가(印可)를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의 한암(漢巖) 스님을 찾아가자
한암 스님이 묻기를 "육조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계속해서 용성(龍城)ㆍ혜월(慧月)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스님은 만공(滿空) 스님을 찾아갔다가
더욱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스님은 처음에 만공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했다가 재발심을 하고 다시 정진하였으며,
마침내는 전법게(傳法偈)를 전수받으면서 선종 제77대의 법맥을 계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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