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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光化門)과 해태상(獬豸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21. 20:51
광화문(光化門)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景福宮)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이다.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에 비해 그 규모와 격식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며,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1395년에 세워졌으며,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문루를 받치는 기단 석축에 세 개의 홍예문이 있는데,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하였다.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때를 알리는 데 사용하였으며, 천장에는 주작 그림이 그려져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궁제에 따라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광화문은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일부 복원공사를 거쳐 2010년 8월 15일 공개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161 (세종로)
해치상(해태상) - 獬廌像(獬豸像)
서울 광화문 앞에는 해태상이 있다.
경복궁이 처음 지어질 때 세워진 것이 아니라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수되던 1894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의 해태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염원의 뜻으로
또는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비는 뜻으로 세웠다.
해태는 옳고 그름과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는 상상의 동물로 이미 고대사회때부터 등장해봉건군주의 기강과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갈기털을 휘날리는 사자와 해태가 모두 벽사와 수호의 의미를 나타내는 동물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불교문화는 조금씩 뒷전으로 밀려났다.이에 따라 사자의 모습도 조금씩 변하게 되었고 전형적인 사자모습과는 다른
해치 또는 해태라는 동물이 나타났다.
즉, 사자모습에서 해태모습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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