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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유엔군 초전 기념비(舊 UN軍 初戰 記念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8. 3. 04:19
1950년 7월 5일 이 자리에서 미 제24보병사단 소속 제21 보병연대 및
제52야포대대 A중대로 구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미 합중국 군대와
공산침략군간의 최초의 전투를 개시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MADE 22ND
KSC CO
21 SEP 72
구 유엔군 초전 기념비(舊 UN軍 初戰 記念碑)
‘구(舊)’자를 붙여 ‘신(新)’ 유엔군 초전비와 구별하여 불린다.
본래 오산 죽미령전투(竹美嶺戰鬪) 당시 보병 B중대 1개 소대가 배치되었던
1번국도 건너편의 99고지에 위치했으나
2019년 평화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기단부는 이전하면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1950년 7월 5일 죽미령전투 이후인 1955년 스미스부대 장병들이 다시 돌아와
전사한 전우들을 기리며 지역의 유지들과 함께 540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1990년대까지 오산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소위 ‘UN탑’이라 불렸다.
경기도 오산시 경기대로 742 (외삼미동)
유엔군 초전기념관 www.osan.go.kr/osanUnfw/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기념
바로 이 자리에서 서기 1950년 7월 5일에 미 제24보병사단 소속의
제21보병연대 "스미스전투부대"와 미 제52야포대대 "A"중대의 406명의 장병이
미합중국 군대와 공산 침략 군대와의 사이의 최초의 전투가 있었노라
미군에게 동판을 건네받는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1978. 7. 5.)
지갑종 회장에게 동판을 건네받는 곽상욱 오산시장(2014. 7. 5.)
51년만의 귀향(歸鄕), 돌아온 동판(銅板)
1950년 7월 5일 죽미령 전투에서 희생된 스미스 부대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舊 초전기념비 기단부에는
기념비 건립 계기를 적은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 동판은 1963년 누군가에게 도난당해 미국을 떠돌다
2014년에야 고향인 이곳 죽미령에 돌아오게 되었다.
이 동판은 1977년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이
미국 하와이에 있는 한 골동품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1978년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하는 미 제25사단의 도움으로
한국 땅에 다시 들여오게 되었는데,
이후 2014년 마침내 오산시에 전달하게 된 것이다.
동판이 있던 기념비의 빈 공간은 1964년에 석제(石製)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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