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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花隨柳亭) - 보물 제1709호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9. 24. 19:12

    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花隨柳亭) - 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은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만들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이 사라졌지만 원형의 건축물이 잘 남아 있다.

    * 1794년(정조 18) 창건, * 1934년 해체・수리

     

     

     

    용연의 경치를 표현하는 용어에 대해

     

    용연과 방화수류정은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해

    여러 용어를 사용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했다.

    정조는 화성 축성 이후 화성의 봄 풍경인 춘 8 경과 가을 풍경인 추 8경을 지정했다.

    그 가운데 추8경에 ‘용연제월(龍淵霽月, 용연의 개인 달)’이 있다.

    19세기 초 홍길주는 『표롱을첨』이라는 책에서

    ‘용연후월(龍淵候月, 용연에서의 달맞이)’로 기록했으며,

    고종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 8경 시 병풍에는

    ‘용연순채(龍淵蓴菜, 용연의 순채)’라 하여

    용연에 가득한 순채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꼽았다.

    근대기에는 1912년 이원규가 「수원8경가」에서

    ‘나각망월(螺閣望月,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동북공심돈 위의 달)’을

    수원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록했다.

    수원에 살던 일본인 사카이 마사노스케도 1914년

    ‘용지대월(龍池待月, 용연에서의 달맞이)’을 수원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꼽았다.

    그동안 주로 사용해 온 ‘용지대월’은 사카이의 저작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용연(龍淵)

     

    용연은 화성의 북쪽 성밖에 있는 연못이다.

    금강산 구룡연을 비롯해서 전국의 이름난 명소에

    용연이라는 명칭이 두루 쓰였고 갖가지 전설이 있다.

    화성의 용연은 용머리처럼 생긴 용두 바위에서 유래했다.

    용두 바위 위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용두각(龍頭閣)’이라고도 부른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용연이 반달처럼 생겼고,

    용두 바위는 물고기를 잡는 조대(釣臺)로 쓸 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연의 물이 넘치면 서쪽의 출수구를 통해 수원천으로 흘러 나간다.

    출수구에는 용이 되기 전 단계의 짐승인 이무기 상을 새겼는데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용연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인 ‘용지대월(龍池待月)’은

    화성에서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꼽힌다.

     

    * 1796년(정조 20) 조성, * 1976년 주변 정비, * 2011년 주변 정비

     

     

    용지(龍池)와 용두암(龍頭巖) 이야기

     

    정조대왕께서 화성을 쌓으면서 방화수류정을 짓기 전

    이곳은 수원천이 휘돌아 나가는 제법 깊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하늘로 올라가기를 기다리며

    천 년 동안 수양을 쌓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용은 매일 연못으로 놀러 나오는 귀여운 한 소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여러 번 그 소녀를 도와주었지만 소녀는 용의 존재를 몰랐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소녀는 아리따운 여인으로 성장하고

    용도 하늘로 오를 날이 가까워졌지만 문제가 생겼다.

    어느덧 용은 소녀, 아니 성숙해진 여인을 짝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용과 여인은 서로 다른 존재라서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고,

    거기에다 여인은 혼인을 앞두고 있어, 용은 하늘을 다스리는 옥황상제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옥황상제는 인간이 되어 여인과 살든지

    여인을 잊고 승천을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러나 용은 승천하여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는 용이 되는 게

    소녀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승천을 선택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하루만 인간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옥황상제는 소원을 들어주며 소녀를 만나게 해 주었으나 헤어진 후

    다시는 소녀의 얼굴을 쳐다봐선 안 된다고 하였다.

    소녀와 만난 후 승천하기를 기다리던 용에게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용은 충만한 하늘의 기운을 온몸에 받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토록 연모했던 여인을 아주 잊을 수는 없었던지

    잠시 공중에 멈추어 여인이 사는 집을 바라보았다.

    아! 우연의 일치인지, 그 순간 여인이 용이 승천하는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용은 가슴과 온몸이 굳어지며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천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굳어진 용의 몸은 용연 옆으로 떨어져 내려 언덕이 되었고 머리 부분은 바위가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두암으로 부르게 되었고

    용이 살던 연못은 용지, 또는 용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출처 : 수원문화원, 수원지명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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