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마고지 삼용사의 상(白馬高地 三勇士의 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0. 26. 04:14
1952년 10월 12일 13시 20분경에 한국군 제9보병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육탄 3용사(강승우 소위, 오규봉 하사, 안영권 하사)의 11차 돌격으로
백마고지 주봉을 탈환한 후에 야간 방어를 성공함으로써,
낙타 능선을 제외하고 백마고지의 결정적인 확보에 크게 기여하였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하게 진지전이 전개되었던 시기에
강원도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m)를 확보하고 있던 한국군 제9보병사단이
중공 제38군의 공격을 받고 1952년 10월 6일부터 14일까지 9일 동안에 걸쳐 치른 방어전투이다.
이로써 철원 북방의 전략적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백마고지 삼용사의 상
삼군신(三軍神)
중위 강승우(中尉 康承宇), 하사 안영권(下士 安永權), 하사 오규봉(下士 吳奎鳳)
영혼(靈魂)의 안녕(安寧)을 비나이다.
동상 건립 취지문
근세기 민족사의 비극, 6.25 사변은 겨레의 가슴에 쓰라린 상처를 깊이 새겨 놓았습니다.
이 역사적 국난을 당하여 영광된 자유의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애국 용사들이
젊음을 불사르고 꽃잎처럼 사라져 간 살신성인의 희생적 정신은 영원히 간직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철원·김화·평강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 백마고지를 강탈하려는
중공군 제38군 휘하의 제112 및 제114사단을 맞아 혈전(血戰)을 거듭한 백마부대
용사들의 활약상은 6.25 전사(戰史) 중에서도 더욱 빛나는 일장(一場)을 장식한 바가 있읍니다.
백마고지(395 고지)의 피어린 피아(彼我) 탈환전은 10일간에 걸쳐 24회를 거듭했으며,
길이 3km, 폭 1.5km의 고지에 작렬(炸裂)한 28만 발의 포탄은 고지의 높이를 1m 낮추고
피아 전사상자(戰死傷者) 1만 5천여 명으로 시산혈하(屍山血河)
생지옥(生地獄)의 혈전(血戰)을 벌였던 것입니다.
1952년 10월 12일 오전 8시, 마지막 탈환전의 명령을 받은 공격 부대는
‘죽어도 이 고지에서 죽고, 살아도 여기애서 살자’라는 비장한 각오로 진격을 개시하였읍니다.
일진일퇴(一進一退) 앞서 간 전우(戰友)는 쓰러지고 시신을 방패(防牌) 삼은 다음
용사(勇士)가 또 나아갈 때 단말마적(斷末魔的)으로 퍼부어대는
적 중화기(重火器)에 의해 전우들은 무참히 쓰러져 갔읍니다.
이렇듯 살기(殺氣) 진 분노(憤怒)가 하늘을 찌를 때, 분연(忿然)히 일어선
강승우 소위(康承宇 少尉)와 그를 따른 오규봉(吳奎鳳)·안영권(安永權) 두 일등병은
돌격부대의 최선봉으로 나서 박격포탄에 폭약을 장착하고 비호(飛虎)같이
육탄으로 적의 “토치카(tochka)”에 돌진하여 승리의 혈로(血路)를 개척하고
장렬(壯烈)히 산화(散華)했던 것입니다.
3군신의 뒤를 이은 공격부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돌격,
한(恨) 많은 백마고지를 완전히 재탈환하여 피눈물 나는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생명,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국난의 위기를 구한 3군신의 영혼은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횃불이며, 우리 군인의 정신적 지주인 것입니다.
자랑스런 3군신의 얼을 이어받은 국군이 월남에 파병되어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허다한 악조건을 극복하며, 수많은 베트콩을 무찌르고 월남 평정 사업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백마고지’ 전투에서 빛을 남긴 선배 용사들의
정신적 전통에 힘입은 바 큰 것입니다.
1973년 2월 월남에서 승리의 영광을 안고 역사적인 개선 귀국을 함에 있어서
백마부대 장병은 그 기념사업으로 어린이대공원에 백마고지 3용사의 동상을 건립하여
60만 국군 장병에게는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고
국민들에게는 통일 조국을 향한 강철 같은 승공 정신의 상징으로 길이 보존하여 합니다.
전면 휘호 박정희 대통령 각하
1973년 10월 12일
백마개선기념사업위원회
백마고지 삼용사
그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던가
철의 삼각지대의 전략적 요충백마고지
최후의 발악인가미친 듯 중화기를 퍼부으며
개미떼처럼 밀려드는 중공 오랑캐
드디어 내려진 최후의 공격명령
바로 10월 12일 아침 8시아군의 돌격은 감행되었다.
앞서간 전우가 쓰러지고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을 때
돌격부대의 앞장섰던 강승우 소위
그 뒤를 바싹 따르는안영권, 오규홍 두 일등병이
박격포탄에 폭약을 싸안고적진을 쏘아보는 성난 눈동자들!
'나를 따르라!’이윽고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호같이 적진에 몸을 던졌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 소리,
하늘 높이 치솟는 불덩어리,
혈로가 트이자 뒤따르던 국군 용사들일제히 돌격을 시작하였다.
"돌격 앞으로!"
적을 무찌르며 앞으로 달렸다.삽시간에 탈취한 백마고지 높이에
펄펄 휘날리는 아름다운 태극기여!
그러나 애석하여라,최후의 승리를 안겨준 우리 삼용사,
끝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삼용사여!
오늘도 조국 수호의 영원한 횃불이 되어그 충성스러운 애국혼이
이곳에 서리고 있다.
백마고지 삼용사의 상(白馬高地 三勇士의 像)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0-2-04
6.25 동란 중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시절의 삼각지대 내에 요충지인 백마고지에서
우리의 9사단 장병들은 이 고지를 기필코 강탈하려는 중공군 38군의 노도와 같은
파상적인 인해전술을 죽음을 각오한 혈전으로 물리쳤으며 1952년 10월 12일에
고지 정상을 재탈환할 당시 공격 부대의 선두에서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는 적의 중화기진지를
목숨을 바쳐 폭파하고 장렬히 산화한 소대장 강승우 소위 그리고 안영권, 오규봉 일등병 등
백마고지 삼용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다.
1973년 2월 이 백마고지 삼용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은 백마부대 장병들은
월남전을 통하여 크나큰 업적을 남김으로써 그 위용을 떨친 바 있으며,
귀국 시에 개선 기념사업으로 성금을 모아서 군인정신의 귀감이요,
승공통일의 상징으로 이 백마고지 삼용사 상을 세웠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능동) 어린이대공원 內
'국내 나들이 > 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 (0) 2021.10.28 강소천 문학비(姜小泉 文學碑) (0) 2021.10.27 존 비 코올터 장군 상(Statue of General John B. Coulter) (0) 2021.10.25 시인 정지용 상(詩人 鄭芝溶 像) (0) 2021.10.18 만남(Soul Meeting) (0) 202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