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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의 개국시조 온조(溫祚)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1. 2. 20:10

    백제의 개국시조 온조(溫祚)

     

    ○ 생존 기간 : ?년~28년

    ○ 주요 직위 : 백조의 시조(재위 BC 18~AD 28)

    ○ 주요 업적

    - 온조는 고구려 주몽의 셋째 아들로서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오간 마려 등 10명의 신하로 

      보필을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고 건국하였으니, 이 때는 전한 성제 홍가 3년(BC 18년)이었음.

    - BC 5년(온조왕 14년)에는 남한산에 천도하였고, AD 9년(온조왕 27년)에는 마한을 멸망시켰음.

    - AD 19년(온조왕 37년)에 형(兄)인 비류(沸流)가 죽어 비류백제(沸流百濟)가 멸망하자,

      온조는 나라의 명칭을 십제(十濟)에서 백제(百濟)로 고침.


    ※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朱蒙:또는 鄒牟)이 북부여에서 졸본부여로 도망 왔을 때,

       그곳의 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다. 주몽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했는데, 얼마 뒤 왕이 죽고 주몽이 왕위에 올랐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비류(沸流), 둘째 아들이 온조(溫祚)였다.
       뒤에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리(琉璃)가 찾아와 태자(太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백성을 이끌고 남하했다. 비류는 미추홀(彌鄒:지금의 인천)에 정착하고,

       온조는 하남 위례성(河南 慰禮城: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과 남한산성을 포함한 일대)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 정착에 실패하고 죽었는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온조의 위례성에 합쳐진 후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AD19년, 온조왕 17년).

       그 세가(世家)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부여(扶餘)를 성씨로 삼았다 한다.

      한편, 「삼국사기」등에 기록된 온조왕 재위 연간의 대부분의 일들은 백제의 발전 과정에서  점차

      이루어진  일들을 소급하여 실은 것으로, 당시 마한 전체를 통일했다는 기록도 훨씬 뒤의 일로 보이며,

      또 백제 연맹체의 단계를 넘어서는 왕권의 확립은 온조왕 때가 아닌 고이왕 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삼국사기〉 백제전 온조왕조에 실린 별전에는 주몽이 온조의 의부(義父)이며,

      백제의 건국자는 온조의 형인 비류라고 되어 있고, 비류와 온조를 낳은 이는 우태(優台)로 되어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교천지산길 284-88 (지산리)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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