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수원화성 북수문과 동북각루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2. 2. 27. 21:12

    북수문(화홍문)

     

    북수문(北水門)은 화성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일곱 칸의 홍예문(虹霓門)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화홍문(華虹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창(華虹觀漲)'은 화성에서 꼭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조선 헌종14(1848)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다.

    1932년에는 '수원명소 보존화'를 주축으로 수원시민들이 힘을 모아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다.

    2016년에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창문을 복원했다.

     

    * 1795년(정조 19) 창건. * 1848년(헌종 14) 홍수로 유실 후 재건.

    * 1922년 홍수로 유실.  * 1932년 복원.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동북각루(東北角樓)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바위(龍頭巖)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은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만들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대왕은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이 사라졌지만 원형의 건축물이 잘 남아있다.

    1974년(정조 18) 창건. 1934년 해체 수리.

     
     
     
     

    '수원사랑 > 수원화성(水原華城)'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  (0) 2022.10.17
    수원화성의 눈 내리는 날  (0) 2022.01.21
    통천미석(通穿眉石) - 수원화성  (0) 2022.01.08
    화성도(華城圖)  (0) 2022.01.04
    수원화성 설경  (0) 2022.01.0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