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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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 석계단(聖住寺址 石階段)과 금당지(金堂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9. 20:13
금당지 불대좌(金堂址 佛臺座) 오행으로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 또는 금부처님을 상징하여 고려 초까지는 불전을 금당(金堂)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법당(法堂)이라는 명칭이 쓰였는데, 법당이라는 의미 속에는 영원한 자유와 진리로 충만한 법의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시 부처님을 모신 전각의 통칭이다. 절의 본당으로 본존불을 모신 건물이다. 충남 문화재자료, 성주사지 석계단(聖住寺址 石階段)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성주사의 금당에 오르는 돌계단이다. 이 계단 양쪽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여 세워 놓았는데 그 조각 수법이 뛰어났다. 그러나 1986년 도난당하고, 현재의 것은 사진을 기초로 복원한 것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성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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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 석불입상(聖住寺址 石佛立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8. 20:11
충남 문화재자료, 성주사지 석불입상(聖住寺址 石佛立像) 이 불상의 얼굴 모양은 타원형인데 심하게 풍화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 왼쪽 귀는 없어지고 코는 시멘트로 보수해 전체적인 인상이 일그러졌다.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들어 배에 대고 있는 형태이며 손은 없어졌다. 입고 있는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었으며, 어깨에서 배까지는 유(U) 자 보양의 무늬를, 양팔 등에는 계단식 무늬를 표현하고 있다.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 사이에 민불(民佛)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소박한 모습을 한 불상이다. 민불(民佛) : 권위적인 모습을 모두 배제하여 친밀감이 느껴지는 불상.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성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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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7. 21:10
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통일신라 말기 성주사에 머무르면서 선문 구산(禪門九山) 중 성주 산문을 일으킨 무염대사(無染大師, 801~888)를 기리기 위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에 따라 지은 비석으로, 10세기 초에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5,120여 자의 긴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의 화려한 문장을 최인연(崔仁渷)이 해서체로 쓴 것이다. 내용은 무염대사의 성장과 출가, 중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는 과정, 귀국하여 성주사를 일으키고 불법을 전하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종사(禪宗史)와 당시의 신분제도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남포오석(藍浦烏石)이 재료인 이 비석은 1천여 년의 풍상(風霜)을 견디며 고스란히 남아 있어 남포오석의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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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西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6. 21:15
보물,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西 三層石塔) 성주사지 금당지(金堂址) 뒤에 3기의 석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이중 기단(二重 基壇) 위에 만들어진 삼층석탑으로 면석(面石)과 탑신석(塔身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撐柱)가, 지붕돌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새겨져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양식을 띠고 있다. 화강암으로 되었으며, 높이는 443cm이다. 이탑은 지붕돌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는 불교 행사 때 금동판이나 기타 장식품 등을 매달아 탑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재 상륜부가 없어졌다. 이 탑은 승탑(浮屠, 부도)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 사적기(聖住寺 事蹟記)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定光)·가섭(迦葉)·약사여래(藥師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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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東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5. 21:18
보물,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東 三層石塔)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은 금당(金堂) 터 뒤에 3기의 석탑 중 동쪽에 있는 탑이다. 이 탑은 승탑(浮屠, 부도)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사적기(聖住寺事蹟記)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定光)·가섭(迦葉)·약사여래(藥師如來) 사리탑(舍利塔)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석탑은 중앙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양 옆에 동 삼층서탑과 서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국내에는 이와 같은 가람배치는 이례적인 것인데 발굴조사 결과,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세워 1 탑 1 금당 형식의 가람배치를 조성한 후 뒤에 석탑 3개를 다른 곳에서 옮겨와 추가로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탑은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으로 면석(面石)과 몸돌(碑身)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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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4. 20:06
보물,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은 성주사의 불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중 기단(二重 基壇) 위에 세운 5층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634cm이다. 기단부와 옥개석(屋蓋石), 탑신석(塔身石)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1층 몸돌에 사리공(舍利空)이 있으며 기단부와 1층 몸돌 사이에 굄돌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의 전형적 석탑 양식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는 것인데, 이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5층 석탑이 올려져 있다. 이는 이곳이 옛 백제(百濟)의 영역이었으므로 백제탑과 신라탑의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거나, 이 시기에 나타난 다양한 탑 양식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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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3. 21:13
보물,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 성주사지 금당지 뒤의 3기의 석탑 중 가운데에 있는 탑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를 상징하려고 초기에는 튼튼하고 높은 2중 기단(二重 基壇)을 가진 거대한 3층 석탑을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3층 석탑의 규모가 작아진다. 이 석탑은 규모만 축소되었을 뿐 형식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는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료는 반려암(斑糲岩)이며, 높이가 410cm이고,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날카로운 윤곽의 지붕돌이 특징이다. 이 탑은 승탑(浮屠, 부도)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사적기(聖住寺事蹟記)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定光)·가섭(迦葉)·약사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