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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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군 이최응의 묘 석조유물(興寅君 李最應의 墓 石造遺物)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22. 5. 27. 19:11
흥인군 이최응의 묘 석조유물(興寅君 李最應의 墓 石造遺物)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 소재 흥인군(興寅君) 이최응(李最應, 1815~1882)의 무덤에 놓였던 문인석(文人石), 신도비(神道碑), 망주석(望柱石)이다. 이최응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양백(良伯), 호는 산향(山饗)이다.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 1788~1836)의 셋째 아들이고,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형으로 흥인군에 봉해졌으며, 민씨정권의 주요 인물로서 아우인 흥선대원군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1865년(고종 2) 4월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提調)를 지냈고, 9월에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호위대장(護衛大將)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실권을 잡자 관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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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2. 19:11
보물,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世宗 英陵 神道碑)는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452년(문종 2)에 세운 비석이다. 현재 비신이 심하게 부식되어 표면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 비문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비문을 지은 정인지와 글씨를 쓴 이용의 이름은 확인할 수 있다. 이수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마주 보며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으로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치게 조각되었다. 1469년(예종 1) 영릉을 경기도 여주로 옮기면서 서울 영릉에 있었던 신도비와 석물(石物)을 묻었다. 1691년(숙종 17)과 1738년(영조 14)에 영릉 신도비가 노출되었는데, 논의 끝에 다시 묻어 두었다. 1974년 옛 영릉 터를 발굴하여 비신과 이수를 발견하였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