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청계천(淸溪川)"의 본래 명칭은 "개천(開川)" 이었다..
    국내 나들이/하천(河川)으로 2008. 12. 7. 16:52

                   "청계천(淸溪川)"의 본래 명칭은 "개천(開川)" 이었다.

     

                    청계천은 경복궁 서북의 백운동에서 발원한 청풍계천(淸風溪川)을 본류로 하여 도성안의 백악, 인왕산, 남산,

                    매봉 등의 여러 물줄기를 모으면서 서울 도성의 중심부를 관류하여 오간수문(五間水門)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13.7Km의 하천이다.

                    개천(開川) 본류의 하폭(河幅)은 10∼30m 정도였으며, 지류들은 하폭 10m 이하의 소하천들이었다.

                    하천은 도성 내부를 거의 정확히 양분하였기 때문에, 정도 직후 서울의 설계에 기본적인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은 청계천 이북(이동)의 궁궐, 관아, 상가(商街), 상층(上層) 민가 지대와 청계천 이남의 중하층 민가지대로

                    크게 구분되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하여 상하(上下) 이원적(二元的)인 서울의 공간적 위계가 정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계천은 조선왕조 개창 직후부터 도성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 계선이었다. 이러한 구분의식은 개항기에도 대체로 지속되어 외국 공관들은

                    모두 청계천 본류의 이남(충무로의 일본공관과 명동의 중국공관)과 이서(정동 일대의 구미공관), 즉 공간 위계상

                    하위 영역에 분포하였다.

                    서울 간선도로망 역시 청계천의 흐름을 따라 배치되어 경복궁 - 황토현, 종루 - 동대문간이 간선도로로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사대문 중 동대문과 남대문에 우월적 지위가 부여되는 배경이 되었다.

     

     

                    청계천(淸溪川)은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조선조 제3대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

     

                     청계천(淸溪川)은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開川)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

                     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청계천이 복원 된지도 3년이 흘렀다. 도시의 흉물이었던 청계천은 복원을 통해 자연 하천 생태계라는 생명을

                    얻어 이제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와 함께 1일평균 6만5천명이 다녀가는 관광지로 탈 바꿈하였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