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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분의 순교자가 묻힌 곳 "왜고개 성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09. 3. 20. 05:50

                    열(10)분의 순교자가 묻힌 곳 "왜고개 성지"

     

                    왜고개 성지의 유래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3가 1번지 현재 국군중앙주교좌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와현(瓦峴),와서현(瓦署峴) 또는 왜고개로 불리던 곳으로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왜고개가 한국천주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박해시절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에 묻히면서부터다.  

                    기록상 가장 먼저 순교자가 묻힌 것은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했고,그 시신은 서 야고보 등에 의해 왜고개로 옮겨졌다가

                    박해가 진정된 뒤에 미리내로 이장되었다.

                    또한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聖) 베르뇌 주교, 성(聖) 브로트니에르 신부, 성(聖) 볼리에 신부,

                    성(聖) 도리 신부, 순교자 프티니콜라 신부와 순교자 푸르티에 신부, 성(聖) 우세영 알렉시오 등 일곱 분의

                    순교자가 33년간 묻힌 곳이고,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성(聖) 남종삼 요한, 성(聖) 최형 베드로 등

                    두 분의 성인이 43년 동안 매장되었던 유서 깊은 교회의 사적지다.

     

     

                    왜고개 성지의 유래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3가 1번지 현재 국군중앙주교좌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와현(瓦峴),와서현(瓦署峴) 또는 왜고개로 불리던 곳으로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왜고개에는 모두 10분의 순교자가 묻혔다. 그분들 중 8분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따라서 이곳은 순교성인들이

                    쉬어간 자리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과 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한 장소다.

                    1981년 11월 7일 그분들이 묻힌 곳에 육군중앙성당을 지었으며, 1989년 10월 23일에는 군종교구가 설립되었고,

                    1990년 2월 13일에는 초대 군종교구장 정명조(아우구스티누스)주교의 서품식과 함께 국군중앙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92년 12월 16일에는 이곳에 군종교구청이 건립되었고, 1999년 12월 15일에는 제2대 군종교구장

                    이기헌(베드로)주교가 착좌하여 군 사목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왜고개성지에 묻힌 순교자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순교자 푸로티에 안토니오 신부(1830~1866),

                    성 베르뇌 시메온 주교(1814~1866),                    순교자 프티니콜라 미카엘 알렉산데르 신부(1828~1866),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신부(1838~1866),          성 우세영 알렉시오(1845~1866)

                    성 도리 베드로 헨리코 신부(1839~1866),            성 남종상 요한(1816~1866),

                    성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1840~1866),                성 최형 베드로(1814~1866)

     

                    왜고개 성지인 국군중앙주교좌성당 전경

     

                    국군중앙주교좌성당 내부

     

                    조선시대 이 곳은 한성부 남부 둔지방(屯之坊) 와서계(瓦署契)였다.

                    이 곳의 토질은 서울 그 어느 곳보다 기와와 벽돌을 만들기 좋은데다가 흙이 풍부하고 한강물을 끌어 쓰기가

                    편리했기 때문에 조선초기부터 와서가 설치되었다.

                    태종 6년(1406) 6월 해선(海宣)이라는 승려가 태종에게 아뢰기를, "한성에는 초가집이 많아 미관상 좋지 않으며,

                    화재의 위험이 많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대량으로 기와를 굽는 관아를 설치하여 사람들이 값싸게 사서 쓸 수 있게

                    하면 10년이 못되어 모든 집들이 기와집으로 바뀔 것입니다." 라고 하자 태종은 이를 옳게 여겨 한성의 모든 집들을

                    기와집으로 바꾸도록 명하였다.

                    이리하여 한성의 두 곳에 별와요(別瓦窯)란 관아를 설치하고 승려 270명과 기와 굽는 장인(匠人),

                    즉  와장(瓦匠) 40명을 뽑아 대대적으로 기와를 굽게 하였다. 그러나 설치 3년째 되던 해에 큰 흉년이 들자

                    별와요는 폐지되고 와서만 남게 되었다. 와서는 이 후 500 여년간 존속되다가 고종 19년(1882)에 폐지되었다.


     

     

                   성당 입구의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님상

     

                   2009년 2월16일 선종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말씀인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란 문구의 플래카드가

                   국군중앙주교좌성당입구에 게첨돼 있다.

     

     

                                                                       일곱 순교자들이 33년간 묻힌 곳

                    이곳은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7분의순교자가 33년동안 묻혓더 곳이다. 1866년 3월7일 새남터에서는

                   성 베드뇌 주교와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와 성 볼리외 신부와 성 도리 신부 등 네 분의 성직자가 순교하였고,

                   3월11일에는 프티니콜라 신부와 푸르티에 신부와 성 우세영 알렉시오 등 3분이 순교햇다.박순집 베드로는

                   몇몇 신자들과 함께 5월 12일에 시신을 찾아내 새남터 부근에 임시로 묻었다가 5월 27일에 왜고개로 이장하였다.

                   이들의 유해는 1899년 10월 30일에 뮈텔 주교에 의해 왜고개에 묻힌 지 33년 만에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안장되었고, 1900년 9월 4일에는 명동성덩으로,시복을 앞둔 1968년 5월에는 베르뇌 주교, 볼리외 신부, 도리 신부,

                   우세영 알렉시오 등 네 분의 유해는 절두산성당으로 옮겨져 현재가지 안치되어 있다.

                   그러나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의 유해는 가족들의 요청으로 1911년 8월에 한국을 떠나 프랑스 다종으로 이장되었다가

                   현재는 유해의 일부가 절두산 성당에 모셔져 있다. 시복이 되지않은 프티니콜라 신부와 푸리티에 신부의 유해는

                   아직도 명동성당 지하에 모셔져 있다.

     

                                                                       두 성인이 43년간 묻힌 곳

                     이곳은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두 분의 성인이 43년 동안 묻혔던 곳이다.

                     성 남종삼 요한은 1866년 3월 7일에 천주교를 신봉한 죄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엿고, 성 최형 베드로는

                     1866년 3월 9일에 서소문 박 네거리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박순집 베드로는 두 성인의 시신을 찾아

                     신자들과 함께 왜고개에 합장하였다. 이들의 시신은 43년 만인 1909년 5월 28일에 뮈텔 주교에 의해 발굴되어

                     명동성당에 안치되었다가, 시복을 앞둔 1968년 5월에 절두산 성당으로 옮겨져 현재가지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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