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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와 항아리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09. 4. 2. 20:47
순교자와 항아리
순교자들은 박해(迫害)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 항아리를 구워 팔며 살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항아리를 굽는 사람들을 “점놈”이라 부르며 아주 천하게 여겼습니다.
점놈의 신분이 얼마나 낮고 천한 것이었는지 당시 사람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못 받고 살았던 천하디 천한 신분인
소 잡고 돼지 잡던 백정들조차도 항아리를 굽는 사람들을 “점놈”이라 부르며 무시했고 말을 할때도 “해라”를
했을만큼 천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점놈,옹기쟁이들이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는지는 “점놈이 양반집에 들어가면 사람같지 않은 놈이
집안에 들어왔으므로 양반집 개조차 짖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 것으로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분과 재산, 고향, 그리고 가족들끼리도 뿔뿔이 흩어지면서 까지
사람대접도 못 받는 항아리를 굽는 옹기쟁이 “점놈”으로 무시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항아리를 구워 파는 것은 먹고살기 위한 생계의 수단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 대한
전교와 교우들끼리의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항아리를 구울 때 어떤 작은 항아리 하나의 밑에다 십자가 표시를 해서 구웠습니다.
그리고는 큰 항아리 안에 작은 항아리들을 넣고 또 넣어 팔러 다녔는데 큰 항아리 속에 들은 항아리들 가운데
작은 항아리 하나는 그 밑바닥에 십자가 표시를 한 항아리였습니다.
순교자들은 이 마을 저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항아리 사세요”를 외칠 때 십자가 표시가 되어있는
항아리의 밑부분을 두드리면서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혹시 교우 아니십니까?”라는
표시였습니다. 만일 상대편이 교우이면 항아리를 흥정하는 체 하면서 서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것입니다.
“여기는 박해가 없었습니까?” “지난 번 박해때 도망쳐 나온 누구를 혹시 알고 계십니까?” “신부님께서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저쪽 어느 마을에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와 고해 성사를 주고 계십니다” 등등 이렇게
순교자들이 구웠던 항아리는 생계수단이면서 교우들끼리의 소식을 주고받는 정보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었보다도 그 항아리에는 점놈으로 불리는 천한 신분으로서 무시당하고 살면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놀라운 자기 낮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자기포기와 믿음의 영성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남양성모성지에서 20km이내에 활초리와 백학이라는 아주 오래된 교우촌이 있습니다. 이곳들 역시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든 교우들이 항아리를 구우며 살던 마을입니다.
여기에 모아 놓은 항아리들은 남양,비봉,마도지역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항아리들 중에는 아주 오래된 것들도
있으므로 이 가운데 어떤 것들은 틀림없이 그 박해 교우촌에 살던 교우들이 구운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항아리에 깃든 순교자들의 하느님을 향한 정신을 순례자 여러분들이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항아리들을
이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순교자들과 같은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자기포기를 배우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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