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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장군 동상(姜邯贊將軍 銅像)
본관 금주(衿州: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 은천(殷川).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조신(朝臣)들은 항복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이를 반대하고 하공진(河拱辰)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그 뒤 한림학사·승지·중추원사(中樞院使)·이부상서·서경유수·내사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으로 침입해 오자 이듬해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군사 20만 8000명을 이끌고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위에 쫓겨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고 개선할 때 영파역(迎波驛)에서 왕의 영접을 받았으며,
검교태위(檢校太尉)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
식읍 3백호에 봉해지고 추충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 이듬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가 1030년 왕에게 청하여 성을 쌓고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이듬해 특진검교태사시중 천수군개국후(天水郡開國侯)에 봉해졌다.
현종 묘정(廟庭)에 배향, 수태사 겸 중서령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 ,"구선집(求善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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