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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 제2의 수도 "심양시(沈陽市)"해외 나들이/중국(中國) 2009. 8. 13. 22:45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 제2의 수도 "심양시(沈陽市)"
선양 시(심양, 중국어 간체: 沈阳, 정체: 瀋陽, 병음: Shěnyáng)는 중국 랴오닝 성의 성도이다.
펑텐(봉천, 奉天)은 선양의 옛 이름이고 심양이란 이름은 심양 남부를 흘러 지나는 혼하(渾河)의 옛 이름 심수(瀋水)의
북쪽에 있다는 심수지양(瀋水之陽)이란것에서 유래된다. 국가역사명성 (国家歴史文化名城)에 선정된 관광 도시이며
만주족은 무크덴(Mukden)이라고 부르고 유럽나라에서도 무크덴으로 많이 알고 있다.
선양은 7200년에 이르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석기에 취락했던 신락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초반, 사르후의 싸워 승리한 만주족의 누르하치는 선양을 점령하고 후금의 수도로 정했다.
1634년에는 성경(盛京)(만주어 무크덴)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청나라로 이름을 고친 후금은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중국을 점령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변경하지만, 선양은 제2의 수도 대접을 받아 1657년에는 심양부라고 명명되었고,
형식적이나마 중앙정부에 준거한 관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시내에는 그 때의 황궁·선양고궁이 남아 있다.
19세기 후반, 선양까지 한민족의 이동을 인정하지 않았던 만주(현재의 중국 동북부)가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지역을 개방하자 선양은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선양은 지역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동북삼성을 묶는 관청도
설치되었다. 도시로서 선양이 크게 팽창했던 것도 이 시기이다. 1905년 러일전쟁 중에는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의 야전을 치렀다.
1912년 청조 멸망 후에는 장작림이나 장쉐량 등의 선양 군벌의 거점이 되었고, 1923년 선양 시정부가 설치되고 시정이
시행되어 1929년 장쉐량에 의해서 선양시라고 개칭되었다.
1924년에 대한민국의 독립군 삼부 중의 하나인 정의부가 지린과 봉천을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독립 지사가 망명하여 활동했던 시기가 바로 이 당시이며, 당시에는 '만주 봉천'으로 알려졌었다.
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가지의 대부분은 남만주 철도의 부속지로 여겨져 일본이 행정권이나 경찰권을 쥐고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에 의해서 일본의 관동군에 점령되면서, 그 이름을 봉천이라고 하였고, 1945년의 일본의 패전 후에는
선양이라는 이름을 회복하였다.
한족의 입장에서 봉천(시)이라는 지명은 9.18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도시명이며,
만주국 봉천군관학교가 있었던 일제 시대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중국의 입장에서 '봉천'은 '일제 만주국의 봉천'으로 강점되었던 치욕의 지명이므로, 지명을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봉천은 현재의 랴오닝 성과 지린 성의 동남부로 지금은 개편을 통해 랴오닝 성과 지린 성으로 개편,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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