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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환장군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수호 공적비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1. 12. 4. 11:40

    김영환장군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수호 공적비

     

    여기 화살같이 흐르는 짧은 생애에 불멸(不滅)의 위업을 남기고 영원히 살아남은 영웅(英雄)이 있다.

    김영환장군(金英煥 將軍)!! 그는 1921년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나 형인 김정렬장군(金貞烈將軍)과 함께

    우리 공군 창설과 그 육성에 신명(身命)을 기울이며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명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였으며

    6.25 한국전쟁 중에는 탁월한 결단으로 우리민족의 성보(聖寶) 고려팔만대장경판을 포화의 위기에서 구하는

    호국호법의 큰 공을 세우고 1954년 3월 5일 34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하게 전사하여 그 고귀한 명예를 영원히 남기고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고려말 몽고병(蒙古兵)을 물리치려는 거국적 원력으로 시작한 호국의 얼이 담긴 민족의 성보로

    조선 세종 때에는 왜(倭)의 끈질긴 기증요구에 중신들은 응하려 하였으나 세종의 결연한 의지로 보존되어 오다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 낙오자 9백여명이 해인사에 주둔함으로써 민족의 성보는 위기일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1951년 7월 경남지구 공비토벌에 참여한 김영환장군은 1951년 9월 18일 오전 6시 30분 지상군 부대의

    긴급 항공(航空)지원 요청에 따라 4기 편대로 합천 상공에서 정찰기와 만나라는 무전명령을 받는다.

    정찰기로부터 지시된 훈령은 해인사의 공비소굴을 발사 폭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정찰기의 표시용 백색연막이 선명하게 목표를 가리켰고 그곳은 바로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앞마당이었다.

    네이팜탄 1발이면 팔만대장경판은 물론 해인성지가 곧 잿더미로 바뀌고 말 찰나에 놓였다.

    바로 이때 김장군은 목숨건 상부의 폭격명령을 어기고 요기(僚機)에게 명령했다.

    명기(名機)는 나의 뒤를 따르되 나의 지시 없이는 절대로 폭탄과 로켓트탄을 투하하지말라

    다시 정찰기로부터 독촉명령이 내려졌고 2, 3, 4번 기장들은 편대장에게 재차 폭격명령을 내려줄 것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편대장 김장군의 뜻은 단호했다. 각 기장들은 일체 공격을 중지하라는 날카로운 명령만이 무전기를 통해 전해졌다.

    다만 사찰 상공을 몇바퀴 선회한 뒤 해인사의 뒷산 능선 넘어로 폭탄과 로켓트탄을 투하하고 귀대했다.

    대장경판이 보존된 장엄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참으로 목숨건 탁월한 판단과 애국심으로 이룬 불멸의 위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해인총림 대한민국 공군이 뜻을 모아 그의 빛나는 호국호법의 장렬한 공적을 영원히 기리고자 이 공적비를 세운다.

     

    호국하온 민족혼인 고려팔만 대장경판  국난중에 호국하고 재난에도 호민했네

    6.25의 위기맞아 김장군이 지켰으니  호국장군 아깝게도 서른네살 젊은나이

    순국으로 산화하니 짧은시간 굵게살다  가야산이 변함없듯 동해바다 고갈되고

    백두산이 마멸되나 위대하신 그이름은  이나라와 함께하여 영원토록 빛나리라

     

     

    김영환장군 약력

     

    본적: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103,   생년월일: 1921년 6월 26일

    1939년 3월 경기공립중학교 졸업, 1943년 3월 일본 관서대학 항공과 수학

    1948년 5월 14일 육군소위 , 1949년 8월 12일 비행단 참모장(공군 중령),1952년 6월 18일 제1전투비행단 부단장(공군 대령),

    1953년 5월 1일 공군본부 작전국장 겸 제10전투비행단 단장, 1954년 1월 28일 공군 준장 진급, 1954년 3월 5일 비행훈련 중 전사

    훈장 및 포상: 금성충무무공훈장, 금성을지무공훈장, 미 공로훈장, 대통령 수장, 6.25 종군기장, UN 종군기장

     

    불기 2546년(2002년) 6월 17일

     

    공적비를 세운이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보암 법전,해인총림 방방 법전, 총무원장 정대, 해인사 주지 세민,공군 보라매회 회원일동

    글 지은이 가야산인 이지관, 글씨 쓴이 송천 정하건,비 조각한이 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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