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어록(忠武公 語錄)일상생활속에서/사람사는 현장 2012. 2. 18. 15:53
충무공 어록(忠武公 語錄)
勿令妄動 靜重如山(물영망동 정중여산)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 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1592년 5월 7일 경상도로 출전하여 처음으로 전개한 옥포해전을 치르면서 한 말씀.而爲遮遏海寇 莫如舟師(이위차알해구 막여주사)
바다로 침임하는 왜적을 저지하는 데는 수군을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임진왜란발발 10개월전 이었는데 즉 1591년 7월 비변사에서 국방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왜적은 수전에는 능하지만 육지에서는 민활하지 못하다.
그러니 육지 방비에 주력하자고 하고 신립장군은 수군을 폐지하자고 까지 하였고
또한 민심을 ‘동요시킨다’는 이유로 ‘방비시설을 중지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러한 의견 충돌상황에서 충무공이 분연히 일어나 행양방어의 중요성과 수군활동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我國所恃 唯在舟師(아국소시 유재주사)
우리나라가 믿을 것은 오직 수군뿐이다.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삼척서천산하동색 일휘소탕혈염산하)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충무공은 1594년 4월 한산도에서 태구련과 이무생에게 장도를 만들게 하였다.그리고 칼자루에 바로 위의 칼면에 이와 같은 도명을 한 칼에 한 구절씩 금상감으로 새겨 두었다.
益勵舟楫 海口待變(익려주즙 해구대변)
배들을 더 한층 정비하여 바다 어귀에서 사변에 대비하라는 뜻이다.
이순신 제독은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 자세를 볼 수가 있다.
水陸俱擊 庶可盡殲(수륙구격 서가진섬)
수군과 육군이 함께 진격해야만 적을 섬멸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순신 제독은 육군과 수군이 함께 합동작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순신 제독은 육군 지휘관인 경상 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육지에서 적을 몰아 바다쪽으로 나오게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때 기록으로 남겼던 말이 수륙구격 서가진섬이다.
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라는 뜻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
칠천량 해전의 패전 후에 조선 수군의 숫자는 120명, 전선은 12척이었다.
이에 조선 정부에서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전에 참전하려는 명을 내렸고,
이 때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금신전선 상유십"이란 말을 하였는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라는 뜻이다. 결국 이 12척으로 조선 수군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충무공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전라도로 진출하는 왜적을 막아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전투의지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훈시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적을 물리쳐 살아남을 수 있으나 적을 두려워하여 살고자 도망치면
적에게 패배를 당함은 물론 목숨도 잃게 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이 훈시를 듣고 용기백배한 조선수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여
불과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적을 물리쳐 전라도를 방어할 수 있었다.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도 두렵게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부가 길목을 막아도 천군이 두려워한다는 길목이 이곳 명랑이라며 명랑해전을 앞두고 한 말이다.
此讐若除 死則無憾(차수약제 사즉무감)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유한이 없겠습니다.
1598년 11월 18일 오후 6시경 왜장 고니시 유니나카가 이끈 적선이 남해에서 무수히 나와엄목포에서 정박하고 있고 또 노량으로 와서 정박하는 배들도 많았다.
충무공은 명나라 도독 진린과 약속하고서 이 날 밤 10시경에 같이 길을 떠나
19일 밤 2시경에 노량에 이르러 왜적선 500여 척을 만나 아침까지 크게 싸웠다.
충무공은 전선 약 150척으로 새로운 각오를 해야만 했고 이번을 최후의 전투로 장식해야 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서 17일 밤 자정에 천지신명께 빌었다.
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마라. 군사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1598년 11월 19일(약력 12월 16일) 이른 아침 노량 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시며 하신 말씀.'일상생활속에서 > 사람사는 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MTB(Mountain Bike, 산악자전거) (0) 2012.03.04 왕산해수욕장 "추억 속으로"... (0) 2012.02.26 대전역(大田驛) (0) 2012.02.18 MLB HISTORY BAND (0) 2012.01.09 청도 화양의 둘레길 나들이 (0) 201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