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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건축미 "화성장대(華城將臺)"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2. 4. 11. 07:37
빼어난 건축미 "화성장대(華城將臺)"
화성장대(華城將臺)는 장수가 올라가 전투를 지휘하는 곳으로, 화성장대는 화성의 제일높은 서쪽에 있는 장대(將臺)이다.
보통 성안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는 장대는 대개가 누각으로 지어져 경관이 좋고 건축미도 빼어나다.
남한산성의 서장대(수어장대)와 진주성의 남장대(촉석루), 수원 화성의 서장대(화성장대)와 동장대 등이 유명하다.
화성 화성장대에는 조선 후기 문화중흥을 이뤘던 정조(1776~1800년)의 부국강병 꿈과 효심이 서려 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긴 정조는 1794년 자립적인 혁신 새도시 화성 건설에 나선다.
성곽과 행궁, 주거지뿐만 아니라 농업 기반시설인 만석거(저수지)도 만들었다.
그는 세자가 15살이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함께 화성에서 살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내비쳤다.
화성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1795년 윤 2월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드레 동안 화성에 행차했다.
행차 나흘째이자 혜경궁의 회갑연 전날 낮과 밤 두차례에 걸쳐 친위군인 장용외영 소속 군사 3700여명의 훈련을 실시한다.
서장대에서 훈련을 지휘한 정조도 갑옷과 투구를 썼다. 북과 나팔, 함성, 포성이 진동했으며, 야간에는 성 전역에 횃불을 켰다.
효자로 소문난 정조는 행궁에 머물고 있는 혜경궁이 놀랄까봐 포성이 높지 않은 포탄을 쓰도록 하고,
그것도 행궁에서 멀리 떨어진 서북쪽으로만 쏘도록 했다.
일제와 6·25를 거치면서 유실됐던 화성장대 등은 1975년 복원공사로 원형을 찾았다.
화성 건축의 전말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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