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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흉상해외 나들이/캐나다(加拿大) 2013. 7. 19. 05:14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흉상
캐나다 퀘벡의 로어타운의 중심 루아얄 광장(Place Royale) 앞에 있는 루이 14세 동상(흉상)
루이 14세는 프랑스와 나바라를 다스린 왕으로
본명은 루이 디외도네(프랑스어:Louis-Dieudonn)이다.
태양왕(Le Roi Soleil)이나 대왕, 대식가와 같은 별명으로 불렸으며
유럽에서 프랑스의 힘과 세력을 확장시키고자 재위 중에 전쟁을 세 번, 작은 분쟁을 두 번씩이나 치렀다.
절대 군주의 자리를 다져 “짐이 곧 국가니라”와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역사학계에서 이 말은 그의 정적들이 퍼뜨린 헛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1608년 사무엘 디 샤플랭이 퀘벡을 세우고,
1642년에 몬트리올이 건설되는 빌미가 되는 등 서방진출이 본격화되자,
드디어 1663년 루이 14세는 퀘벡에 총독을 보내 식민지를 선포하게 된다.
그 후 백년간 신프랑스 식민지는 날로 번창해 갔다.
그러나 유럽의 패권을 놓고 약 백년간 세계도처에서 진행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전쟁이 북미에도 옮겨 붙어,
1759년 퀘벡시가 그 이듬해인 1760년에는 몬트리올이 차례로 함락되면서
프랑스령이었던 퀘벡은 영국의 수중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곧이어 미국의 독립이라는 예기치 못한 도전에 영국은
식민지 프랑스계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1774년 ‘퀘벡 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효용성을 보지 못하고 1791년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입헌법’에 의해
영국계 일색의 상부 캐나다와 지금의 퀘벡 주인 하부 캐나다로 나눠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부 캐나다에서는 프랑스계의 인구가 절대적인데 반해
극소수의 영국계가 사회지도층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민족 간 대립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불평등에 반발하던 프랑스계는 결국에는 애국당과 메티스의 반란이라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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