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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드레(Andre) 수사 치유의 기적, 기도실입니다.
    해외 나들이/캐나다(加拿大) 2013. 8. 25. 05:12

    안드레(Andre) 수사 치유의 기적, 기도실입니다.

     

    몬트리올의 몽루아얄 산 중턱에는 안드레 수사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요셉 성당이 있다.

    원래는 안드레 수사가 매일 기도하는 기도실이 있었는데

    안드레 수사가 기도를 하면 병이 나아서 밀려드는 환자들을 위해 더 크게 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50년에 걸쳐 지은 곳이 바로 성요셉 성당이다.

    안드레 수사가 사용했던 기도실은 아주 검소하고 소박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희생과 봉사로 모든 걸 나누어주고 본인은 아주 검소하게 지낸 곳이다.

    안드레 수사가 기도하여 낫고 가면서 놓고 간 목발 등이 많이 놓여져 있다.

     

     

     

    안드레(Andre) 수사 , 그는 누구인가?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드 베쎄트(Alfred Bessette)였습니다.

    1845년 8월 9일에 태어났으나 너무나 허약하여 생존할 가망을 염려한 나머지

    그는 태어난 바로 다음날 유아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너무나 가난하였기에 벌목공으로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1849년 퀘백의 파르함(Farham)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알프레도가 9살 되던 해, 불행하게도 부친은

    벌목장에서 쓰러지는 나무로 사고를 입고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알프레도의 모친은 40세에 10명의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미망인이 되었고,

    모친 또한 3년 후 폐결핵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안드레 수사는 후에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께 자주 기도 드렸다”고 회고했습니다.

    가족은 뿔뿔이 떨어져야만 했고, 알프레드는 힘겨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기도문을 읽거나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는 실력이어서

    일거리를 찾으며 장사를 배우는데 매진 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해 가며 가진 것도 희망도 없이 13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노동자

    허약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드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습공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고 자신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건축현장에서 혹은 농장소년, 양철공, 대장장이, 제빵공, 구두 수선공 그리고 마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알프레드는 프랑스계 캐나다 이민자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직조공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체력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성심을 다했습니다.

    “열악한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작업장에서 남들이 나를 능가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는 1867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1870년 몬트리얼 소재 성 십자가회에 수련자로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윗사람들은 그의 건강 때문에 처음에는 성소를 의심했으나 후에 받아드리게 되었으며

    ‘안드레’라는 수도자의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틀담 중학교의 수위직을 받았습니다.

    “수도원에 지원했을 때 윗사람들은 나를 문밖으로 내쳤지만,

    40년 동안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수위직과 더불어 그는 마루청소, 등잔닦기, 장작 들여오기 등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습니다.

     

    친절한 수사님

    마침내 안드레 수사는 환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에게 성 요셉에게 기도할 것을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받은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25년간 그의 작은 접수실이나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 앞 전차역의 작은 접견실에서

    하루에 6시간 내지 8시간씩 아픈 사람들을 접견하였습니다.

    그는 후원인들의 도움과 학생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받은 돈을 모아 최초의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는 성 요셉께서 이 산위에 성전을 짓기 원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설명할 수 없는 치유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안드레 수사는 여기저기 환자들을 방문했으며 미국까지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섭리라는 손에 달린 도구에 불과하며, 요셉 성인의 작은 도구일 뿐입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씀 하시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안드레 수사가 기적을 행하는 줄 알지요.

    치유에 주시는 분은 하느님과 요셉 성인이십니다.

    제가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성 요셉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고 치유는 계속되었습니다.

    초면인 사람들과는 그가 늘 지녔던 장난스럽고 익살스러운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냉랭함을 보여주는 초연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슬퍼하지 마세요. 좀 웃는 것이 몸에 좋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는 기쁜 모습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기쁨을 전해 주곤 하셨습니다.

    또한 대화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될 듯한 말이 나오면 화제를 슬쩍 바꾸어

    그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재치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굳은 결심의 원칙을 따를 때에는 더욱 강경했습니다.

    특히 그의 눈빛은 부드러운 친절함과 장난기 섞인 섬세함으로 빛났습니다.

    다른 이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는 섬세함으로 가끔 아는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찾아 온 사람들이 털어 놓은 이야기에 쉽게 감동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주위 사람에게 친근감을 주고 그들로부터 사랑 받은 것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큰 업적을 이룬 사람

    이렇게 몇 년이 흐르는 사이 거대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군중들이 성당으로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1904년 최초의 작은 경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규모였습니다.

    그리하여 1908년 다시 확장하게 되었고 1910년에 재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 확장 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성 요셉께 바치는 아주 큰 성전을 지어야만 했습니다.

    1917년 1000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지하 성당을 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지하 성당도 대성전을 짓기 위한 기초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자들과 함께 오라토리오(기도하는 장소)를 짓기 위해 일생을 보냈고

    드디어 성 요셉 성당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성 요셉께 바치는 성지 성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룬 큰 사업”에 대해 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군중들이 성당에 큰 행사라도 있어 몰려 올 때에는 조용히 기도하기 위해

    성가대 뒷자리로 조용히 들어가 숨어서 기도하며 자취를 감추시곤 했습니다.

    1931년 경제위기로 인해 바질리카의 건축 작업은 잠시 중단해야만 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1936년 성 십자가회 수도원 장상들이 소집한 회의에서 장상들은

    아직 지붕도 없이 추위에 얼고 눈을 맞아 건축 구조가 망가져가던 성당을 더 이상 방치 해 둘 수 없다며

    건축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진행해야 할 건인지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관구장은 안드레 수사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원로한 수사님은 회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저의 사업이 아닙니다. 요셉 성인의 사업입니다.

    그 분의 동상을 공사장에 갖다 놓으십시오.

    성인께서 원하시면 그 분이 지붕으로 덮으실 테니까요.

    그리고 잘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두 달 후 공사가 계속 진척될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인정 넘치는 헌식적인 사람

    안드레 수사는 그를 찾는 사람들을 매우 조심성 있는 친절함으로 맞이했습니다.

    접견실에 찾아오는 수천 명의 방문객들을 맞아 몇 시간씩 보내곤 하셨습니다.

    저녁이 되면 늘 친구와 가정 방문과 병원 방문을 했습니다.

    친구 한사람은 후에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안드레 수사님은 인정 넘치는 분이셨지요.

    그러나 저는 하느님의 사랑이 그로 하여금 병들고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돌봐 주도록 인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외출 할 때 그는 자연스러워 보였고 또는 즐거운 모습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가 친구의 차나 함께 얻어 타고 다니는

     ‘나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노인’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안드레 수사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환자 방문을 놀러 다니는 기분으로 하는 줄 압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저에겐 그런 즐거움 따위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지요.”

    그의 인정 넘치는 마음에는 냉철한 판단력이 있었기에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병을 치유해 달라고 부탁들을 하는데 겸손이라던가,

    믿음의 정신을 구하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육체의 치유보다 훨씬 더 값진 것입니다.”

    혹은 “영혼이 병들면 영혼을 먼저 고쳐야 하지요.” “당신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하느님이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까?” “먼저 신부님께 고해를 하시고

    성체를 영하신 다음 저를 찾아오세요”라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안드레 수사는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잘 이해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그는 아주 깊이 있는 말씀을 전하시곤 했습니다.

    “고통 받는 자들은 하느님께 봉헌 할 무엇인가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이 고통을 이겨 내는 것이 바로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이 되는 거지요.”

    그는 고통 받는 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시련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은총을 구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

    안드레 수사의 기도로 치유 받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안드레 수사는

    늘 자신이 치유 은사를 받은 것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치유은사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제가 치유해 준 것도 아닙니다.”

    그는 환자들에게 성 요셉께 9일의 기도를 올릴 것과 축성된 기름이나

    성 요셉 메달을 환부에 대고 기도할 것을 늘 당부했습니다.

    그에게 이런 행위들은 “단순한 사랑과 신앙, 믿음과 겸손의 행위”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는 환자들에게 의사를 만나볼 것을 종용했습니다.

    의사들에게는 “당신의 직업은 참 유익한 것입니다. 과학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신앙입니다.

    안드레 수사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 마음 속 깊이 희망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어떤 신사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제가 그 분께 데리고 간 환자들 중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떠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를 만나 치유를 받은 환자들도 있었고 또 어떤 환자들은 그 분을 만난 후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마음의 평화를 찾고 돌아갔습니다.

     

    하늘로 가는 길

    안드레 수사에게 하늘이란 하느님의 집에 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하느님께 가겠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죽음을 갈망하는 것은 허락되는 일입니다.”

    “지금은 하느님과 떨어져 있지만 제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고 하느님 가까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에게 더 큰 힘이 되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임종의 순간이 가까이 다가올 때 그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많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주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기 밀알 하나가 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생을 통해 하느님께는 이웃을, 이웃에게는 하느님을 알리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라는

    친구의 증언은 그가 얼마나 사랑과 신앙에 점철된 삶을 살았는지 적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일생에서 일과 기도가 언제 시작되었고 언제 끝났는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드레 수사는 일과 기도의 연속의 삶을 사셨습니다.

    안드레 수사는 1937년 92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시 신문에는 그의 장례식에 백만 명 이상의 조문객이 방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몽로얄(Mont-Royal) 산 위에 세워진 성 요셉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안드레 수사는 오늘날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 분처럼 관대하고 지속적인 은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안드레 수사의 시성을 위한 기도-

    복자 안드레 수사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성 요셉 신심을 고취시켜 주시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보게 해 주신 하느님.

    그의 도우심으로 저희가 구하는 기도를 들어 허락 하여 주소서

    성 교회가 속히 그의 시성을 허락해 주시게 해 주시오며

    저희들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으로 이웃을 돌보는 자들에게

    약속된 보상을 그 분과 함께 나누어 누릴 수 있도록

    그분의 믿음과 자비심을 우리도 본받을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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