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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최귀동(경락) 베드로 할아버지의 생애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4. 4. 7. 05:30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최귀동(경락) 베드로 할아버지의 생애

     

    1909년 충북 음성군 금왕면 무극리에서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귀한집의 아들이라 하여 귀동이라고 불렀으며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던중 왜정(倭政) 말엽에 징용(徵用)에 끌려가

    북해도(北海島) 탄광에서 일하다가 모진 박해(迫害)와 고문(拷問)으로 정신병자(精神病者)가 되었다.

    그가 폐질자(廢疾者)가 되자 일본사람들은 등에 주소 적힌 꼬리표를 붙여 한국으로 보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고생(苦生) 끝에 고국의 고향에 찾아 왔지만

    그 부잣집은 일본에 끌려간 자식 걱정에 병에 걸려 가산을 탕진(蕩盡)한 후 모두가 떠나고 없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초연한 마음으로 무극 다리 밑을 찾아가

    많은 걸인들의 틈에 끼여 살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분들을 위해

    설겆이하는 집을 찾아다니며 "남는 밥좀 없어" 없다면 가고 있다면 얻어다가

    동냥도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주고 돌아가시면 용담산 기슭에 묻어 주는 일을 했다.

     과일을 주면 "애들 주지 나 먹을 것 까지 없어" 하며 사양하고 돈을 주면 "나는 돈 필요없어" 하며 거절한다.

    그리고 어깨에 맨 자루는 어린아이들이 노는 곳에 찾아가

    행여 다칠까 사금파리와 병 깨진 것을 주워다가 버리는 일을 40여년간 하시던중

    1976년 9월10일 황혼이 깃든 저녁무렵 남은 밥 얻어 무극성당을 지나가는 것을

    오(웅진)신부가 보고 뒤 따라가 본다.

    용담산 기슭밑 움막속에는 결핵 정신병자 알콜중독자 맹인 절름발이 등

    18명의 의지할 곳 없고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정신병자이며 고혈압과 동상이 심한 최귀동 할아버지가

    40여년을 남는 밥을 얻어다가 주는 그 숭고한 모습에 오웅진신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본다.

    그날밤 잠못이루며 사무친 것은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머니의 전재산 1300원을 가지고 시멘트 1포를 사서 그분들을 위해 살 수 있는 집을 지으려고

    벽돌을 찍어 용담산 기슭에 1976.10.15 기공 11.15 준공한 방 다섯칸에 18명을 입주시켰다.

    이 집을 동네사람들은 ‘사랑의 집’이라고 불렀다.

    1986.2.15 하느님께선 한국교회를 통해 사랑의 삶을 살아온 최귀동 할아버지께

    가톨릭대상(사랑부분)이란 영광을 안겨 주었으며 이 뜻을 기려 청주교구장 정진석주교님과

    도지사, 교육감, 사단장, 국회의원과 ,1500여명의 신자 주민 모두 모여

    시가행진을 하고 축하기념식을 무극성당에서 개최했다.

    이때 부상 120만원을 어디에 쓰시기를 원하느냐는 오신부의 질문에

    모든이의 가슴을 울리던 한마디 "쓸 곳은 한곳 밖에 없어 길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어"

    이에 모든이는 한마음이 되어 노인요양원을 짓기로 하였다.

    1986.10.15 꽃동네 회원 5만여명이 모인 결핵요양원 준공식장에서

    만장일치의 호응속에 6억원의 회원성금과 국가지원 6억원으로 1987년 준공된 노인요양원에서 사시다가

    평소 지병인 고혈압이 재발되어 1990.1.4 13시15분 81세의 나이로 주님의 나라에 가셨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세상 떠남을 KBS, MBC 및 모든 신문에선 특별보도와 머리기사로 전국민에게 알렸고

    온 국민의 애도(哀悼)속에서 꽃동네 탑위에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당신이 가르쳐 주고간 글을 새긴 바위밑에 1.8 오후4시 고이 안장하였다.

    그분의 장례에 쓰인 석관과 동상 및 비석의 좌대는 평곡석재 차주원회장이 만들어 주었다.

    이 귀한분 가시는데 그 뜻을 기리려 노태우대통령과 감옥숙영부인께서 조화와 성금을 하사하시어

    비석을 제막하게 되었으며 슬픔에 잠긴 많은 분들이 즉석에서 성금을 모아 높이 2.5m의 동상을 건립키로 해

    1주기가 되는 1991.1.4에 그분의 뜻을 본받으려고 동상과 비문을 새겨 제막하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교훈은 "인명은 하늘에 달렸어"라고 하시며 이 지상에서 사랑의 삶을 마치고 천국에 오르셨습니다.

    1991년 1월 4일 꽃동네회장 오웅진 신부

     

     

    1985년도

    가톨릭대상

     

    사랑부문 최경락님

     

    귀하는 현세에서 우리가 찾는 살아있는 작은 그리스도로서 어둠에 빛을 비추고

    희망을 심어 주셨기에 그 고운 향기를 길이 보전하고자 이패에 새겨드립니다.

     

    1986년 2월 15일

     

    가톨릭대상 심사위원회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위원장 현성오

    회장 엄익채

    지도신부 안상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사목주교위원회 평협담당 김남수 주교

     

    =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 꽃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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