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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坡州 英國軍 雪馬里戰鬪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5. 5. 22. 06:10
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坡州 英國軍 雪馬里戰鬪碑)
이 비는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혈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하였다.
주변의 돌들을 채석하여 쌓아올리고, 상하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비(碑)를 부착하여 만들었다.
위쪽에 있는 비 2개 가운데 왼쪽에는 유엔기를 새기고, 오른쪽에는 희생된 영국군의 부대 표지를 새겼으며,
아래쪽의 왼쪽 비에는 한글로, 오른쪽 비에는 영문으로 당시 전투 상황을 기록하였다.
유엔군의 참전 상황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는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등록되었다.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2-2번지 =
전투 약사(戰鬪 略史)
1951년 봄 중공군 제 63군의 3개 사단은 서울로 향하는 적성,연천지구 침공로에 대공격을 감행하여 왔으며,
적군의 진격로에는 영국군 제29여단이 임진강이 굽어보이는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영국군 “그로세스터스샤” 연대 제1대대는 제170박격포대대 C중대와 오늘날 “임진포대”로 명명된 포병단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영국군여단휘하의“벨줌”대대와 두 개의 다른 대대는 “그로세스터스샤”연대 동측에 포진하였으며,
제8“쎈추리온”전차대와 25“파운드”포탄의 제45야포대 및 제55공병중대가 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단의 방어지역은 12,000미터에 달하는 광범한 전선이었다.
1951년 4월 22일은 따뜻한 봄날씨였으며, 바로 이날 임진강 격전은 시작되었다.
전투 첫날밤 “그로세스터스샤” 대대는 10배에 달하는 적군에 대항하여 용전하였다.
그러나 다음 2일간의 혈전끝에 설마리계곡까지 후퇴하였다.(전적비지역)
4월 24일까지의 격전에서 생존자들은 이 기념비 위에 솟아있는 고지에 집결하였으나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탄약은 거의 소모되고, 피로와 허기에 지친상태에서도 대대는 그 날 밤 적의 연속적인 공격을 물리치고 고지를 사수하였으며,
4월 25일 아침 적의 포위망을 마지막으로 공파하기 위한 공격을 감행하기까지 진지를 고수하였다.
“그로스타”연대는 혈전끝에 67명만이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59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526명은 포로가 되었으며, 이들중에는 180명의 부상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3년간의 포로수용소에서 34명이 사망하였다.
이 격전에서 “그로스타” 연대는 2명이 최고무공훈장을 받았으며,모든 장병들의 희생정신은 세계전사에 빛나고 있다.
3일간에 걸친 이들의 과감한 격전은 당시 중공군 진격을 지연시키고
유엔군의 재편성에 소요되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중공군의 서울침공을 저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한편, 한국전쟁중(1950-1953) 영국군은 1,109명이 전사하고 2,674명이 부상하였다.
(영국 퇴역군인을 위한 단체)가 한국전쟁 참전을 추모하기 위해 1990년 9월 18일에 세운 기념판임.
이 기념비는 한국정부의 자혜스러운 도움으로 건립되었다.
글로스타샤 연대 제1대대는 이 기념비가 또한그들에 못지않게 자유를 사랑하고 .
그들과 또 다른 영국 연방군에종군중 산화한 용맹스러운 한국인을 추모하리라 간절히 비는 바이다.
솔마리 전투
一九五一년 四월 二二일 ~ 二五일 글로스터 언덕위에 세운 이 기념비는
다음 양 부대의 영웅적인 공적을 찬양하여 기리 기념키 위함이다.
글로스터샤 연대 제一대대
영포병 제一七0 경박격포대 C 소대
이 양 부대는 자유를 수호키 위하여 四일간 이나
거대한 수의 적병에게 포위된 중에서 용감한 투지력을 발휘하였다.
칸 중령 십자가(The Carne Cross)
이 십자가는 1951년 4월 22일~25일 벌어진 임진강 전투 당시 글로스터셔 연대 1대대를 지휘했던
칸 중령이 포로생활 중 만든 것으로 1951년~1953년 북한초로수용소에서 행해진 예배에 사용되었다.
J.P. Carne 중령은 영국 글로스터부대의 대대장으로 중공군 제1차공세(1951년 04. 22~04.30) 당시
적성 일대에서 임진강을 방어하던 중 중공군 2개사단의 집중공세를 받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철수작전을 지휘했다.
이때 글로스터대대는 많은 인명손실을 입고 겨우 39명만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
이 작전으로 미제1군단이 전후방을 동시 차단하려는 중공군의 기도를 분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25전사에서 설마리전투는 영국 제29여단이 적성일대에서 임진강을 방어하던 중
중공군의 제1차 공세를 저지하며 격돌한 방어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제29여단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3일간 버텨냄으로써 인접부대의 철수를 엄호하고 이로 인해
좌우의 인접부대가 안전하게 철수하여 서울 북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칸중령의 글로스터대대는 6.25전쟁에서 부여된 임무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전투부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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