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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천 종박물관(鎭川 鐘博物館)
    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15. 6. 29. 04:43

     

    진천 종박물관(鎭川 鐘博物館)

     

     진천 종박물관(鎭川 鐘博物館)은 한국 종의 연구, 수집, 전시, 보존은 물론 기획전시, 교육 및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5년 9월 개관되었다.

    제1전시실은 범종의 역사, 한국의 범종, 통일신라신대 범종, 고려시대 범종, 조선시대 범종,

    근대의 범종, 일본에 있는 한국범종, 한국. 일본. 중국의 범종과 세계의 종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범종의 제작기술, 범종 제작과정, 범종 설계와 재료,

    문양에 담긴 불교정신, 범종의 소리, 재미있는 종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옥외에는 야외무대와 타종체험 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타종 체험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最古鍾)인 상원사 종과,

    가장 큰 종(最大鍾)인 성덕대왕신종을 1.5분의 1로 축소한 범종을 직접 타종할 수 있다.

     

    충청북도 진천구 진천읍 백곡로 1504-12 (장관리)

     

     

     

     

     

     

     

     

     

     

     

     

     

    종(鐘)의 의미(意味)

     

     

    종은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打樂器)이다. 악종(樂鐘). 시종(時鐘). 경종(警鐘). 범종(梵鐘) 등 그 범위가 넓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컫는 종은 주로 범종을 말한다.

    범종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을 모을 때, 또는 의식을 행하고자 할 때 사용되었는데,

    불교가 융성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종교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

     

     

     

     

     

    최고의 예술미, 통일신라시대 범종(統一新羅時代 梵鐘)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은 한국 범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종신 외형은 항아리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은 형태이며,

    용뉴는 용머리가 천판을 향한 ∩형태로 마치 범종 전체를 물어 올리는 듯하다.

    상대와 하대, 혹은 연곽에까지 반원무늬를 넣었으며, 연곽 내에는 아홉 개씩의 연뢰가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종신에는 악기를 연주하며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주악천인상 한 쌍이 장식되었으며,

    주악천인상과 함께 대칭으로 2개의 당좌도 장식되었다.

    주악천인상은 시대가 내려가면서 2구에서 1구로 변화하여 통일신라시대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려시대 초에 와서는 비천상으로 변화하였다.

     

     

     

     

    고묘지 소장 종(光明寺 所藏 鍾, 광명사 소장 종)

     

     

    1994년 일본 고묘지(光明寺) 측의 요구에 의해 replica된 작품으로 원명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나

    비천의 자세, 종의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 종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9세기 종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건너간 후 3차에 걸친 추명에 따르면 고려 우왕 5년 (1379년) 5월5일에 시마네현의 증선사(增禪寺)에 납입되었다가

    30년 뒤인 1480년 11월29일 근처의 보덕사(報德寺)로 옮겨졌고, 다시 83년 뒤인 1492년 11월 현재의 고묘지로 옮겨졌다.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종은 전체적으로 긴 원통에 가까운 종신(鍾身)을 갖고 있으며,

    실물의 음통(音筒) 윗부분은 파손이 되어 잃어버렸다.

    상대에는 위·아래에 융기선을 돌리고 그 사이로는 1조의 당초문만으로 간략하게 장식하였고,

    하대는 위·아래 부분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안에 반원권문양을 시문하였다.

    연곽(蓮廓)은 상대와 인접하여 4좌가 배치되어 있다.

    좌·우측 연곽대의 위쪽에는 당초문양의 바탕에 천부입상을,

    그리고 그 밑에는 2조의 반월호선(半月弧線) 안에 동자좌상(童子座像)을 배치하였고, 하부 수평대는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당좌는 용의 방향에 따라 앞·뒤에 각 1좌씩 2좌의 원형당좌가 배치되어 있다.

    주악천인상은 구름 위에 꿇어앉아 천의를 휘날리고 있는 모습으로,

    왼쪽의 1구는 장고를 치고, 오른쪽의 1구는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운주지 소장 종(雲樹寺 所藏 鍾, 운수사 소장 종)

     

     

    용뉴는 75.3cm라는 체구에 맞게 새끼용처럼 작고 귀엽다.

    입과 발은 종을 잡고 승천할 것 같은 기운이 아닌 종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듯한 인상을 준다.

    용뉴에 비해 굵은 음통은 크게 상, 중, 하단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상, 하단에는 중앙부에 화문이 첨가된 앙.복련의 연판문을,

    그리고 중단에는 천의를 옆으로 날린 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의 공양좌상을 저부조(底浮彫)로 시문하였다.

    종신에 비해 상대는 폭이 넓고 그 외연을 화문이 첨가된 연주문대로 두르고

    그 내부에 향로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게 배치한 2구씩의 공양자상을 새겨놓았다.

    내부의 종유는 돌출되지 않고 납짝한 6엽의 화문좌형으로서 성덕대왕신종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보다 단순화된 점을 느낄 수 있다.

    하대는 상대보다 폭이 조금 넓고 내부의 중심문양을 삼중권(三重圈)으로 구획된 반원형의 자식문양으로 반복 시문한 점이 다르다.

    종신에는 2구 1조의 주악천인상이 부조되어 있다.

    왼쪽상은 두손을 모아 입으로 횡적을 불고 있으며 다른 한상은 오른손을 머리위에 들어 배 앞에 놓고 요고를 치는 모습이다.

    주악천인상에 보이는 율동적이고도 활달한 천의의 표현이나 볼륨 있는 신체에서 알 수 있듯이

    상원사종, 성덕대왕신종 등과 연맥을 같이 하는 8세기 중엽~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당좌는 다른 범종의 당좌에 비해 자방이 몹시 크게 표현되고 외곽에 8엽의 연화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선림원 종(禪林院 鍾)

     

     

    1948년 양양(襄陽) 설악산에서 출토된 정원(貞元) 입년(804년) 명문을 갖고 있는 범종으로서,

    출토된 지 2년 후인 6·25 전쟁 때 월정사와 함께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그 파편들이 국립춘천박물관에 보존된 범종이다.

    우리 박물관에 소장된 종은 출토당시 황수영박사와 문화국 직원들에 의해 조사된 자료와

    고증을 통해 국립중앙과학관과 원광식 종장이 3년여에 걸쳐 replica한 작품이다.

    각부(各部)의 양식이 신라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용의 머리(龍頭)는 큰 입을 아래쪽으로 벌려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음통의 문양은 5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上帶)는 반원권(半圓圈)의 문양 12개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였고,

    그 안쪽에는 연화문(蓮花紋)을 바깥쪽에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을 조각하였다.

    하대(下帶)는 상대와는 전혀 다르게 위·아래쪽에는 연주문(蓮珠紋)을 두고,

    그 안에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불상 19체(體)를 조각을 한 것이 특징이다.

    대와 인접한 연곽은 4개가 배치되었는데, 연곽대는 사다리꼴을 하고 있으며,

    문양은 상대의 문양과 같게 하였다.

    당좌(撞座)는 전후에 각 1개씩 2좌가 배치되어있다.

    주악천인상(飛天像)은 2구가 한조로 되어 종체좌우(鍾體左右) 배치되어 있는데,

    구름 위의 연화좌(蓮華座)에 앉아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현실적인 조형미, 고려시대 범종(高麗時代 梵鐘)

     

     

    통일신라시대 범종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범종은 시대가 흐르면서 형태와 장식적인 면에서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용뉴는 장식적인 면에 치우쳐 용체가 S자형으로 휘어지게 표현되었으며, 종신 하부는 점차 밖으로 벌어졌다.

    범종의 상대 위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라는 돌출장식이 새로 첨가 되었으며,

    종신에는 연화좌 위의 불·보살상이 장식되거나 삼존상이 천개(天蓋)와 함께 표현되기도 하였다.

    위패 모양의 명문곽을 별도로 부조시켜 명문을 새겼으며, 당좌는 장식적인 의미가 강조되어 3~4개로 늘어났다.

    높이 40cm 내외 소종(小鐘)의 제작도 크게 늘어났으며,

    고려시대 말에는 연복사종을 통해 중국 종의 양식이 들어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청주 운천동 출토 범종

     

     

    1970년도 청주시 운천동에서 일련의 금속공예품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뚜렷한 명문이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종의 형태, 문양 등이 신라종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신라종으로 보고 있다.

    용뉴는 그 입을 천판상(天板像)에 붙이고 있으나, 섬약해보이는 얼굴과 가는 목으로 표현되었고,

    음통(音筒) 역시 장식 없이 형식적으로만 처리되었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구획만을 아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으나 문양이 전혀 시문 되지 않은 점이 매우 독특하다.

    연곽(蓮廓)은 상대 아래 붙어 있는데, 반원권(半圓圈)의 문양 안에 주악천인상을 조각하였고,

    그 바깥쪽으로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으로 장식하였다.

    연곽 안에는 연판으로 장식된 유좌(乳座)위에 융기돌출형을 한 연뢰(蓮雷)가 9개 배치되었다.

    주악천인상은 연곽과 연곽 사이의 종신 중간쯤에 배치하였는데,

    구름위에 앉아 천의를 날리며 비파를 연주하는 1구의 주악상과 그 반대편에는 합장한 모습의 천인상을 부조하였다.

     

     

     

    덴리지 소장 종(天倫寺 所藏 鍾, 천륜사 소장 종)

     

     

    원래 종의 이름은 회진사종(廻眞寺鍾)으로,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온 전통적인 고려 전기종(前期鍾)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종의 모양이 단정하고, 문양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용뉴의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으며,

    천판(天板) 위에는 다른 종에서 찾아보기 힘든 연화문좌(蓮花紋座)와 운문좌(雲紋座)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는 6단의 문양구조를 갖고 있으며, 하대는 소용돌이 문양이 있고,

    전후좌우(前後左右)의 4개소에 사화형(四花形) 연화문이 배치되었다.

    오른쪽 연곽 밑에는 천개의 여래상이, 왼쪽에는 명문곽이 있고,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꽃과 악기를 배열했다.

    당좌는 종신의 전후종복(前後鍾服)에 각각 1좌씩 2좌가 있고, 원형연화당좌(圓形蓮花撞座)이다.

    당좌의 문양은 중앙에 8엽연화문(八葉蓮花紋)을 두고,

    그 주위에 다시 8엽보상화문양(八葉寶相華紋樣)의 연판(蓮瓣)으로 장식하였다.

    오른쪽에는 여래상(如來像)이 있는데, 천개(天蓋)를 갖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에 둘러싸여 연화좌에 앉은 모습이 매우 특징적이다.

    고려전기 종에 나타나는 여래상으로는 이른 예이다.

    여래의 좌우에는 횡적, 비파, 피리와 같은 악기가 천의에 감싸여 천상의 연주를 하며 날고 있는데

    여래와 악기를 함께 혼용하여 조각하는 것도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엔세이지 소장 종(圓淸寺 所藏 鍾, 원청사 소장 종)

     

     

    거의 수직에 가까운 몸체에, 좌우의 당좌를 중심으로 천의가 화려하게 나부끼는 비천이 대칭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아름다운 종이다.

    특히 비천의 돋을새김이 높아서 볼이 통통하여 천진하게 웃고 있는 듯하다.

    하대와 연곽에는 섬세한 당초무늬를 둘렀는데, 당좌 또한 흔히 보이는 연꽃무늬가 아니라 당초무늬를 둘러 장식하였다.

    상대에는 신라시대 종의 전통으로 이어져온 반원권 무늬를 돌렸다.

    용뉴는 크게 구부려 ∩모양을 이루고 있고 입에 문 여의주는 천판과 닿아 있다.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 보이는 음통에도 연꽃무늬가 화려하다.

    이 종과 같은 보살상의 지문판을 쓴 것으로 보이는 미지기인(水城院) 종은 소유자의 기증으로 현재 한국의 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圓淸寺略緣記」에는, "160"0년에 같은 지역 조후쿠지(長福寺)에 있던 종을 구로다(黑田)라는 사람이 엔세이지에 기증했다고 한다.

     

     

     

    양식의 혼합, 조선시대 범종(朝鮮時代 梵鐘)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후기의 범종 형식과 중국 종의 형식이 결합하여

    독자적인 형태와 문양을 갖춘 범종이 만들어졌다.

    음통이 없어지면서 한 마리의 용뉴는 쌍룡으로 바뀌었다.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는 사라졌으며, 상대 아래에는 범자무늬가 첨가되어 독립된 문양 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연곽은 점차 상대에서 멀어져 아래쪽으로 내려왔으며, 당좌는 없어지거나,

    그 수나 위치가 일정치 않아 무의미한 장식 문양으로 처리되었다.

    신의 중단에는 중국 종에서 볼 수 있는 돌출된 가로선인 횡대(橫帶)가 등장하였으며,

    하대가 종구에서 위쪽으로 올라가 배치되었다.

    또한 종신에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 형태의 보살입상이 장식되었으며,

    이 밖에 용무늬·범자무늬·파도무늬 등이 주된 문양으로 표현되었다.

    여백 면에는 종 제작과 관계된 긴 내용의 명문이 빽빽이 기록되기도 하였다.

     

     

     

    수타사종(壽陀寺鍾)

     

     

    수타사 종은 사인 스님이 김룡사 종을 만들고 3개월이 지난 뒤에 제작한 종이다.

    종신의 문양은 김룡사 종의 상대, 연곽, 보살상, 하대 문양의 지문판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무늬와 크기가 동일하다.

    다만 당좌는 커진 종 크기에 맞추어 다시 도안했는지 문양이 커지고 원안의 연꽃잎 수가 8잎으로 늘어났으며,

    원 밖의 장식은 잎사귀 3장이 결합되어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용뉴는 정면을 바라보며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활짝 웃는 듯 하고, 음통 부분을 용의 꼬리가 휘감은 듯 표현하였다.

    하대 역시 기존에 파도무늬와 함께 등장하던 용을 보상화와 연꽃사이에 노니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디자인하였다.

     

     

     

    해인사 홍치4년명종(海印寺 弘治四年銘鍾)

     

     

    이 종은 인수왕비와 인혜왕비의 발원으로 해인사 대적광전이 중수되면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인사 대웅전의 종가에 걸어 예불에 사용함으로써, 문양이 우수하고, 존엄성이 감도는 아름다운 종이다.

    종의 정상(頂上)에는 두 마리의 용(雙龍)으로 된 용뉴가 있으며

    용두는 비교적 작은 편이나, 두 눈과 코, 입 등은 사실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발가락은 날카롭게 표현되었으며, 이전의 신라종, 고려종과는 다르게 5개이다.

    음통(音筒)은 없으나, 천판(天板) 가운데 부분에 종을 주조할 때 일부로 만들어 놓은 구멍이 하나 있다.

    천판은 반원호형(半圓弧形)을 하고 있어 둥글게 보인다.

    견대(肩帶)는 삼산형(三山形)의 귀꽃문양과 연화문대(蓮花紋帶)로 장식되었으며, 상대(上帶)는 만들지 않았다.

    중대(中帶)는 3개의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신(鍾身)의 가운데 부분에는 3조선을 두르고,

    그 위를 화려한 당초문(唐草紋)과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장식하였으며,

    3조선 아래 부분은 4좌의 운룡문(雲龍紋)으로 장식하였다.

    운룡문의 용두는 왼쪽을 향하고 있으며, 운룡문과 운룡문 사이에는 여의주를 하나씩 배치하였다.

    한국종에서 운룡문이 나타난 것은 이 종이 처음이며, 이후 조선 후기의 종에서 간간히 등장한다.

    운룡문 아래로는 노도문(怒濤紋)을 둘러 장식하였다.

    하대(下帶)는 노도문 바로 아래에 형성되어 있으며,

    아래 부분은 태조선으로 둘러져 있고, 하대 밑 부분은 문양이 없는 소문(素紋)으로 이루어져있다.

    연곽(蓮廓)은 종신의 전후좌우 방향으로 4좌를 배치하였으며,

    독립된 사각형을 하고 있는 연곽대(蓮廓帶)는 당초문으로 장식하고,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보살상(菩薩像)이 4구 있는데,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머리에 두광(頭光)을 갖추어,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태안사 종(泰安寺 鍾)

     

     

    종신 명문에 의하면 천순 원년 (1457년)에 만든 종이 파손되어 만력9년(1581)에 다시 주성하였다고 한다.

    종의 형태는 단룡과 음통으로 된 용뉴에 입상대를 갖춘 고려 후기 종 형식에 조선종 특유의 문양들로 표면을 장식하였다.

    ∩모양으로 구부러진 용은 사실적이면서 활기찬 모습이며, 연꽃무늬로 감싼 상대 아래에는

    새로이 옴자로 된 원형범자가 덧붙여 있고, 연곽은 상대에서 떨어져 종복(鍾腹)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좌는 가운데에 8엽의 연꽃무늬를 살짝 도드라지게 하고,

    주변에 파도무늬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게 처리한 다음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마무리하였다.

    하대는 종구에서 13㎝정도 올라온 부분에 돌출한 횡대를 두고 그 사이로 꽃잎에 살짝 빗금을 친 연화당초무늬로 장식하였다.

     

     

     

    김룡사 종(金龍寺 鐘)

     

     

    조선 후기 승려 주종장을 대표하는 사인(思印)스님이 주성한 종이다.

    그가 제작한 김룡사 종을 비롯해 수타사, 청룡사, 화계사, 통도사, 청계사, 강화동종 등이 남아있다.

    김룡사 종은 사인스님이 만든 종 가운데 가장 앞 시기에 해당된다.

    용뉴는 단룡의 종고리와 연꽃으로 마무리된 음통(音筒)은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당좌(撞座)는 수타사(壽陀寺)의 종과 같이 가운데 부분을 연화문(蓮花紋)으로 장식하였고,

    4좌의 당좌는 구슬무늬를 경계로 안에는 평면적으로 도안화된 6잎의 연꽃무늬가 있고

    바깥쪽으로는 연꽃잎으로 한번 돌려 마무리하였으며,

    다시 사방에 2장의 잎사귀를 결합한 화려한 문양을 덧붙여 장식하였다.

    상대는 사각형 구획을 나눠 범자문(梵子紋)으로 장식하였으며 하대는 용문(龍紋)으로 장식하였다.

    상대 밑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을 4좌 두었으며,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연꽃봉오리를 쥐고 구름위에 서있는 보살을 배치하였다.

     

     

     

     

    완주 송광사 종(完州 松廣寺 鍾)

     

     

    고려후기 범종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활기찬 용의 모습과 거북이가 표현된 음통,

    연곽 테두리와 하대 윗부분에 작은 원을 붙여 마무리한 아기자기한 장식, 새침한 표정의 보살등 독특한 표현이 장식되어 있다.

     

     

     

     

    석문의범(釋門儀範) 부식당작법(付食堂作法) 사물(四物)

     

     

    大鐘請冥府衆(대종청명부중) 대종은 명부의 무리를 청한다.

    木魚請水府衆(목어청수부중) 목어는 물속의 무리를 청한다.

    雲版請空界衆(운판청공계중) 운판은 허공의 무리를 청한다.

    法鼓請世間衆(법고청세간중) 법고는 세간의 무리를 청한다.

     

     

     

     

     

    범종(梵鐘), 만물(萬物)을 깨워 세상을 밝히다.

     

     

    범종(梵鐘)을 치는 본뜻은 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동시에,

    불법의 장엄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데 있다.

    아침에 33번을 치는 것은 삼십삼천에 울리라는 뜻이고, 저녁에 28번을 치는 것은 이십팔수에 들리라는 뜻이다.

    범종은 본래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쳤으나, 점차 사찰에서 조석예불(朝夕禮佛)이나 의식을 치를 때 쓴다.

     

     

     

     

    목어(木魚), 물(水), 잠들지 않는 수행의 길로 인도하다.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목어를 물고기 모양으로 취한 것은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가 졸지 말고 도를 닦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목어는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였으나, 점차 용 머리에 물고기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목어는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대자재(大自在)를 얻는 물고기(중생 또는 보살)를 상징한다.

     

     

     

     

    운판(雲板), 하늘(天)의 소리로 날개를 펴다.

     

     

    운판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허 매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운판에는 보통 구름위에 해와 달을 좌우에 배치하거나 전면을 구름 모양으로 채우며,

    때로는 불. 보살이나, 범어로 “옴마니반메홈”글자를 새겨놓기도 한다.

    원래 부엌이나 공양하는 장소에 매달아 놓고 대중에게 공양 시간을 알리기 위한 기구로 쓰였으나, 현재는 아침 저녁 예불 때 쓴다.

     

     

     

     

    법고(法鼓), 땅(地)의 모든 생물을 제도하다.

     

     

    법고는 북소리를 통하여 속세의 모든 축생(畜生: 사람이 기르는 온갖 짐승)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법고의 몸통은 나무로 만들고, 두드려서 소리 내는 양면은 소의 가죽을 쓴다.

    이때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양면에 부착하는데, 이는 음양이 잘 조화되어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종소리, 타음(打音), 원음(遠音), 여운(餘韻)

     

     

    종소리는 타종하였을 때 3개의 구간음으로 구분된다.

    제1구간음은 타종 직후 1초 이내에 소멸되는 소리로 타음(打音)이라고도 한다.

    이 소리는 ‘꽝’하는 순간음으로 많은 부분음이 포함되어 있다.

    제2구간음은 타종한 뒤 5~10초 전후까지 계속되고 이것이 먼 곳까지 전달되는 것으로 원음(遠音)이라고 하며,

    멀리까지 들리는 종소리가 이 소리이다.

    제3구간음은 타종한 뒤 30초~1분 이상 계속되면서 점점 감쇠(減衰)되는 종소리로 여운(餘韻)이라고 한다.

     

     

     

    고대 철 생산지(古代 鐵 生産地), 진천(鎭川)

     

     

    진천 석장리에서는 고대 철 생산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와 같은 야철 유적지가 있다는 것은 주조(鑄造) 여력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금속공예의 제작도 가능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진천 인근 지역인 청주 운천동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이 출토되었고, 고려시대의 용두사지철당간도 남아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진천의 석장리에서는 금속공예의 제작이 이루어졌고 범종의 주조 또한 가능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생거진천대종각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판화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2010년 9월 16일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판화전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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