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호공원(西湖公園)과 서호꽃뫼공원(西湖花山公園)
    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15. 9. 29. 06:27

    서호공원(西湖公園)과 서호꽃뫼공원(西湖花山公園)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위치하고 있는 축만제(祝萬堤)는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이 1799년 수원에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면서

    화성(華城)의 서쪽에 조성한 관개수리시설로 일명 서호(西湖)라 부르고 있다.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 축조한 만년제(萬年堤,경기도기념물 제161호)와

    수원시 장안구 만석공원에 축조된 만석거(萬石渠)와 함께

    3대 제언의 하나로 둔전(屯田)을 설치 운영한 곳이다.
    현재에도 농촌진흥청 농업시험장과 인근 농경지의 수리시설로 사용하고 있어

    역사적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3대 제언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시민들의 여가선용 공간으로 개방되어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속의 수변공원이다.

     

    또한, 서호천 상류지역에 조성한 서호 꽃뫼공원은 2011년 11월에 준공했는데,

    지하에는 하수처리장, 지상에 주민편익시설과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서호생태수자원센터는 하수처리시설로 서호천으로 유입되는 하루 4만7000톤의 생활하수를 처리한다.

    하수처리시설은 질소와 인을 제거하는 4단계 BNR(생물학적 유기산 추출) 공법과

    고속응집침전 기법을 적용, 시설 공간을 줄이고 처리공정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최소화했다.

    이곳에는 체육관, 피트니스, 에어로빅, 탁구장, 도서관, 야외학습장, 생태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발가벗고 삼십리

     

    “수원사람 발가벗고 삼십리 뛴다”는 말이 있다.

    여기엔 아래와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우선 이 설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지금의 화성시 병점동과 수원서호공원이다.

    두 지역간의 거리가 약 30리가 된다고 한다.

    점을 우리말로 풀면 떡전거리로 떡전거리에 살던 한 양반이 발가벗고 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다.

    옛날 수원 도성에서 30리쯤 떨어진 떡전거리에 양반집 자손인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평소에 조상의 산소를 잘 관리하고, 부모님에게도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다.

    그러한 까닭에 고을에서는 비록 그의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아오던 터였다.

    엄한 가풍으로 생활에 있어서도 절제를 하던 그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도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기방 출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원부중(水原府中) 축만제(祝萬堤)가의 행화촌(杏花村=술집)에서

    기생의 아리따운 자태에 취해 술을 마시다 보니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결에 생각하니 그날의 선친의 제삿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못할 불효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급한 마음에 의관도 갖추지 못하고 뛰기 시작해 가까스로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선비 된 자가 의관을 갖추지 못하고 뛰었으니 발가벗고 뛴 꼴이 된 것이었다.

    이 설화는 수원사람의 효심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정자, 서호(西湖)의 항미정(眉亭)

     

    서호(西湖)의 수문 옆에 자리한 항미정(杭眉亭)1831년 당시 화성유수 박기수가 건립하였다.

    항미정의 이름은 송나라의 대문호인 소식(蘇軾, 蘇東坡)이 중국 항주(杭州)의 태수(太守)를 지낼 적에,

    항주를 대표하는 절경인 서호(西湖)가 서시(西施)의 눈썹처럼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시는 중국 월나라의 미인으로 월나라 왕 구천(勾踐)의 신하인 범려(范蠡)가 서시를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고,

    부차가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틈을 타서 오나라를 공격해서 정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시는 평소 지병이 있어서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미모가 출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여인들이 자기도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뻐 보일까 싶어서

    너도나도 인상을 찌푸려도 예쁜 것인지 못 생긴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면 더 못 생겨 보이지 않겠어?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그 여인들을 비웃었고,

    여기서 찡그릴 빈()자와 찡그릴 축()자를 써서 빈축(嚬蹙)’이라는 말이 전했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의 4대 미인은 서시(西施)를 비롯하여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를 일컫는다.

     

     

     

    항미정(杭眉亭)

     

    지정번호: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위치: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251

    항미정(杭眉亭)은 조선 제23대 순조(純祖) 31년(1831년)

    당시의 화성유수(華城留守) 박기수(朴琦壽)가 건립한 것이며,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詩句)에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같다"고 읊은데서 따 지었다고 한다.

    항미정(杭眉亭)은 축만제(祝萬堤) 제방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축만제는 조선(朝鮮) 정조(正祖) 23년(1799년) 농업용저수지로 축조 되었는데,

    당시 축조된 제방(만석거,축만제,만년제) 중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흔히 서호(西湖)로 불리고 있으며, 예로부터 낙조와 잉어가 유명하였다 한다.

    이러한 서호의 경관과 풍치를 한층 아름답고 돋보이게 하는 명물이 바로 항미정이다.

    구조는 ㄴ자형 평면에 납도리집(기둥위에 사각형 단면으로 된 도리를 얹어 꾸민 집)이고,

    홑처마 목조건물로 면적은 43.5㎡ 이다.

     

     

     

     

     

     

     

     

     

     

     

     

     

     

     

     

     

     

     

     

     

     

     

     

     

     

     

     

     

     

     

    326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