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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십이곡 시비(陶山十二曲 詩碑)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5. 11. 12. 23:00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이황(李滉)

     

    이황(李滉)이 만년에 안동(安東)에 도산서원을 세우고 학문에 열중하면서

    사물을 대할 때 일어나는 감흥과 수양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63세 때의 작품으로 모두 12곡이다.

    작자 자신이 이별(李鼈)의 《육가(六歌)》를 본받아 전 6곡(前六曲)을 언지(言志),

    후 6곡(後六曲)을 언학(言學)이라 하였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12수의 연시조. 퇴계는 이 작품을 이별(李鼈)의 《육가(六歌)》를 본받아

    전육곡(前六曲)·후육곡(後六曲)으로 나누고, 전육곡을 ‘언지(言志)’, 후육곡을 ‘언학(言學)’이라 이름 붙였다.

     『언지』는 천석고황(泉石膏肓: 산수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불치병처럼 지나침)의 강호은거(江湖隱居)를 읊었고,

    『언학』은 학문과 수양을 통한 성정(性情)의 순정(醇正)을 읊었다.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목판본이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짓게 된 동기를 「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에서 “한림별곡류(翰林別曲類)는

    호방탕(矜豪放蕩)하고 설만희압(褻慢戱狎)하여 군자의 숭상할 바가 아니다.”,

     “이별육가(李鼈六歌)는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실(實)이 적다.”,

     “국문시가는 한시(漢詩)와는 달라서 노래할 수 있어서 흥이 난다.”라고 말하였다.

    첫째와 둘째는 기존의 시가에 대한 불만이고, 셋째는 국문시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한림별곡」·「관동별곡」·「죽계별곡(竹溪別曲)」의 한림별곡류는 고려 사대부의 풍류를 읊었는데, 관능적이고 향락적이다.

    작자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배척하고, 그 대신 새로운 풍류를 제시하였다.

     즉 산수유상(山水遊賞)을 통해 올바른 성정을 수양해 가는 일이다.

     

    이별(李鼈)의 《육가(六歌)》는 ‘은(隱)’을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것은 ‘결신멸세(潔身蔑世)’의 오만스러운 내용이다.

    작자는 이것을 배척하고 조선 사대부에 맞는 ‘은’을 제시했으니,

    바로 “연하(煙霞)로 지블 삼고 풍월(風月)로 버들 사마/태평성대(太平聖代)에 병으로 늘거가뇌/

    이 듕에 이른 허므리나 업고쟈”의 천석고황이다. ‘은’에는 ‘결신’이 으레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겸선(謙善)’에 그쳐야지 ‘멸세’에 흘러서는 안 된다.

    작자는 특히 멸세의 오만을 경계한 것이다.

     

    작자는 한시와 시조의 차이를 ‘영(詠)’과 ‘가(歌)’로서 파악하고,

    가창이 낳는 흥에다가 시조의 존재 이유를 설정하였다.

    이것은 문학관으로서의 하나의 자각이다. 한시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흥을 시조에서 찾고,

    그 흥을 매개로 자기를 창조하는 그런 자각이다.

    그 자각이 이 작품을 낳게 한 것이다.

     

    「도산십이곡」은 후세 사림파(士林派) 시가의 중심적 지표가 되었다.

     

     

    陶山六曲之一(도산육곡지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다 어떠하리

    하믈며 천석고황(泉石膏황)을 고쳐 무슴 하료.  

     

    연하(煙霞)에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병(病)으로 늘거가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업고쟈.  

     

    순풍(淳風)이 죽다하니 진실(眞實)로 거즈마리

    인성(人性)이 어지다 하니 진실(眞實)로 올한 말이

    천하(天下)에 허다영재(許多英才)를 소겨 말솜할가.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듣디 됴희

    백설(白雪)이 재산(在山)하니 자연(自然)이 보디 됴해

    이 듕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하얘  

     

    산전(山前)에 유대(有臺) 하고 대하(臺下)애 유수(有水)로다.

    때 만한 갈매기는 오명가명 하거든

    어디다 교교 백구(皎皎白鷗)는 멀리 모습 하는고

    춘풍(春風)에 화만산(花萬山)하고 추야(秋夜)에 월만대(月萬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믈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 어늬 그지 이슬고.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석의(釋義)

     

    [1]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연기나 놀의 멋진 자연 풍치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벗으로 삼아,

    어진 임금을 만난 좋은 시대에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병(老病)으로만 늙어가는구나.

     

    [3] 예로부터 전해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사라져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로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없어졌다는 말로써)

    이 세상의 많은 슬기로운 사람들을 어찌 속일 수가 있겠느냐.

     

    [4] 그윽한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었으니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듯 매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5] 산 앞에는 대(낚시터)가 있고, 대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구나.

    갈매기들은 무리를 지어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저 귀하고 좋은 흰 망아지[賢者]는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 망아지는 큰 뜻을 품었나보다.)

     

    [6] 봄바람에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니.

    춘하추동 사계절이 각기 지닌 멋은 사람의 흥겨워함과도 같구나.

    더구나 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소리개는 하늘을 날으니 흘러가는 구름은 그림을 남기고,

    밝은 햇빛은 온 누리를 비추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을 수 있겠는가.

     

     

    陶山六曲之二(도산육곡지이)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재 소쇄(瀟灑)한뒤

    만권 생애(萬卷生涯)로 낙사(樂事)이 무궁(無窮)하여라.

    이 중에 왕래 풍류(往來風流)를 닐어 모습 하고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여도 농자(聾者)는 못 듣느니

    백일(白日)일 중천(中天)하여도 고자(고者)는 못 보느니

    우리는 이목 총명 남자(耳目聰明男子)로 농고같이 마로리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가던 길 살펴 잇내

    가던 길 살펴 잇거든 아니 가고 엇덜고

     

    당시(當時)에 가던 길을 몃회를 보려 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아 도라온고?

    이제야 도라오나니 너의 모습 마로리.

    청산(靑山)은 엇찌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찌하야 주야(晝夜)에 긋디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다 하시니 지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주를 몰래라.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석의(釋義)


    [7]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완락재가 아담하고 깨끗이 서 있는데,

    거기서 수많은 책을 벗삼아 한평생을 보내는 즐거움이란 무궁무진하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랴?

     

    [8] 우레  소리가 산을 무너뜨리도록 심하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며,

    밝은 해가 떠서 대낮같이 되어도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소경이 되지는 않아야 하리라.

     

    [9]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보지 못했지만 그 분들이 행했던 가르침이 앞에 있구나.

    그 행하신 길이 앞에 있는데 아니 행하고 어찌할 것인가?

     

    [10] 예전에 걷던 길을 몇 년이나 내버려두고,

    어디로 가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예전에 걷던 그 길로) 돌아왔는가?

    이제나마 돌아왔으니 이제는 딴 곳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

     

    [11]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12]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道를 알려고 하는 것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

    또 만세에 스승이 될 만한 성인도 다 하지는 못하는 법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어 가는 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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