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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 - 세계문화유산
    해외 나들이/독일(獨逸) 2016. 5. 12. 22:00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 - 세계문화유산


    독일 북부 라인베스트팔렌 주[Nordrhein-Westfalen]에 위치한 쾰른 대성당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80년에 완공하였다.

    약 6세기 이상 건축이 진행된 이 건축물은 여러 건축자들이 최초 설계에 대한 신념과

    절대적인 충성으로 건축 작업에 임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고유의 특별한 가치와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간직한 걸작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유럽 기독교의 영속적인 힘을 증명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6세기 이상에 걸쳐 건축된 쾰른 대성당은 고유의 특별한 가치를 지니며,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간직하고 있다.

    중세시대, 근대 유럽에서 기독교 신앙의 영향력과 영속성을 강력히 입증하는 이곳은

    1248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그로부터 632년 2개월이 지난 1880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돌출된 수랑(袖廊)과 파사드에는 탑 2개가 있으며,

    통로가 5개 있는 하이 고딕 양식 바실리카에 해당한다.

    이 건물은 완전히 통합된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1330년에 건축이 시작된 서쪽 구역에는 양식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건물 전체를 봤을 때는 이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19세기의 건축 작업은 중세의 형태와 기법을 충실히 따랐으며, 성가대석의 본래 예배 설비는 아직도 상당히 유지되어 있다.

    이들 예배 설비는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석판 위에 세워진 대제단과 조각된 떡갈나무로 만든 성가대 좌석(1308~1311),

    채색된 성가대 칸막이(1332~1340), 성가대석 기둥에 있는 14개 조소 작품(1270~1290),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14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포함한다.

    쾰른 대성당에는 976년부터 1612년 사이에 안치된 대주교 12명의 훌륭한 묘소가 있다.

     

    쾰른대성당 홈페이지 http://www.koelner-dom.de/

     



















































    쾰른대성당


    퀼른 교구의 시작은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313~314년에 주교 마테르누스가 퀼른교구의 첫번재 주교이었음은 퀼른 사람들에겐 잘 아려져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대성당 지하 발국작업을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지금의 대성당이 있기까지 수많은 개조, 신축공사들이 있었다.
    870년에 축성된 대략 95m 길이의 두개의 제단을 가진 건축이 이 성당 바로 이전의 형태였다.
    당시 건축외형은 1020년경에 쓰여진 대성당 도서관의 힐리누스 문서집에 전해지고 있다(아래 평면도 5번의 바닥모자이크 그림 참조).

    1164년 대주교 라인날드 폰 다셀(1167년 선종)이 마일란트로부터 이 성당으로 삼왕의 유골을 옮겨왔다.

    그 후계자인 대주교 필립 폰 하인스베르크(1191년 선종)때. 삼왕의 유골 유물함을 위한 제작이 시작되었고,

    유명한 금속공예가 니콜라우스 폰 페르둔이 금세공을 맡았다.

    그의 뛰어난 작품은 1225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다.(아래그림 19번 참조)

    삼왕의 유물함은 유럽 전지역으로부터 순례객을 끌어 들였고, 이 순례는 중세의 대순례 중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1248년 대주교 콘라드 폰 호호슈타덴(1261년 선종)과 대성당 참사회가 주교좌 성당이자

    순례성당으로서의 명성에 적합한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사 책임자는 당시 독일의 로마식 건축양식이 아닌 프랑스 주교좌 성당들의 "신식" 고딕양식을 모색하였는데,

    전체 계획에 있어서는 그러나 당시의 다른 모든 교회 건물들의 규모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1265년경에 제단석 회랑과 함께 제단석 경당이 설치되었다.

    제단석의 첫 부속시설들은 이 시기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1300년경 전체 제단석이 완성되긴 하였으나 1322년에 이르러서야 축성되었다.

    그 이후로는 공사의 속도가 계속적으로 늦추어졌다.

    1360년경 비로소 그동안 상부층의 첫단계 높이까지만 올려 있었던 대성당 남쪽 탑의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퀼른 대학이 시작된 1388년. 전체 건물 중 남쪽 측면 회랑이 완성되었고,

    15세기 말경에 북쪽 측면 회랑의 일곱 둥근 천정이 더 얹어졌다.

    1560년 공사가 완전 중지되기까지 제단석이 마무리되었고,

    가로와 세로의 주랑들도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완성되었다.

    15세기의 한 사료에 따르면 삼왕유물함은 당시까지 마무리된 대성당의 심자교차로에 놓여졌으나,

    1948년 이후부터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19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중단되었던 대성당 공사가 다시 시작된다.

    1842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 의해 지속 공사를 위한 초석이 놓여지고,

    1880년에는 빌헬름 1세 대제 참석하에 이미 대성당 남쪽 탑 꼭대기의 마지막 심자꽃 모형돌이 올려졌다.

    이 시기에 신고딕파의 요작에 속하는 많은 예술품들이 탄생된다.






    Domforum은 대성당과 퀼른시내 성당들의 방문센터로서 대성당의 정면입구 오른쪽 건너편에 위치합니다.

    대성당 평면도를 참조하여 소개합니다.


    1. 북쪽편 측면 회랑의 다섯 창유리. 1507년~1509년사이에 기증됨.(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 수난장면(위). 라우렌시오와 마리아(아래)
       나. 베드로 성인담과 옛세의 뿌리(위). 베드로, 세바스찬과 함께한 기증자(무릅꿇음)(아래)
       다. 목동들의 경배(위), 퀼른 기사성인들 게오르그, 마우리치우스, 게레온, 알비누스(아래)
       라. 마리아 천상화관 받으심(위) 마리아 막달레나, 게오르그(아래)

    2. 클라라 제대. 1350~1360년경. 견고히 부착된 감시과 함께 가장 오래 보존된 제대.

    세공을 들인 날개제단은 삼단으로 열려짐. 이전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 클라라 성당 소속이었던 것이 1811년 대성당으로 옮겨짐.

    3. 유물 기념관 입구. 그 위로 도금된 지팡이의 숫자는 대주교의 재임횟수를 알려줌.

    4. 은총의 성모상('치장의 마돈나'라고도 함)삼왕무덤을 위한 바로크 양식의 기념문 정면에 설치되었다가

    1667년 이후 중앙 경당을 위해 꾸며졌음.

    여러분은 일곱경당 내부를 포함한 재단석 화랑에 이르게 됩니다. 대성당의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1248년에 착공,

    1265년 아직 미완성인 내부 제단부에 담을 올려 이 시기부터 벌써 전례를 위해 이용되어짐.

     5. 아우구스트의 초안에 따른 모자이크 바닥  1885~1892년.

    첫 번째 그림은 대성당의 바로 이전 건축양식 모델을 보이고 있는 대주교 힐데뷸트(818년 선종)을 나타냄.

    6. 십자가 경당: 게로 심자가. 대주교 게로(976년 선종)를 통해 기증됨.
    서양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대형 십자가로 알려져 있음.

    수난하거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닌 막 돌아가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표현.

    머리부분에 생긴 틈새에 대주교 게로가 성체 한조각을 밀어넣어 균열을 막았다는 티이트마르 폰 메르재부르크의 성담(聖談) 보고에 따라

    기적을 행하는 십자가 아래의 제대는  1638년 하인리히 폰 메링에 의해 기증됨.

    7. 엘겔베르투스 경당: 대주교 안른 폰 샤우엔부르크(1588년 선종)의 벽면 묘비, 폰 코르넬리우스 플로리스.

    원래는 내부제단부에 설치되었음. (14번 참조)

    8. 마테르누스 경당: 대주교 필립 폰 하인스베르크(1191년 선종)의 묘비. 1300년경 퀼른시의 성벽을 묘사하고 있음.

    9. 요한네스 경당: 1248년 현재의 고딕식 주교좌 성당의 초석을 놓은 대주교 콘라스 폰 호호슈타덴(1261년 선종)의 묘비. 1265년 제작

    10. 삼왕 경당: 제단석 축성을 계기로 1322년 이 곳에 삼왕 유골함이 모셔짐.

    이시기부터 당시까지  대성당과 시 지도자들에게만 유보되었던 제단석 회랑이 일반신자들과 순례객에게도 문을 열음.
    가운데 : 성서 창 유리. 대성당의 가장 오래된 창문으로 구약과 신약의 대칭적 구조
    왼쪽: 삼왕 창유리.
    오른쪽 : 베드로-마테르누스 창유리 양쪽 모두 1330년경 완성

    11. 대주교 디이트리히 폰 모에르스(1463년 선종)의 묘비. 대성당 건축대가 콘라드 구왼 작으로 간주됨.

    12. 아네스 경당: 성 이르림가르디스 폰 쥐히벨른(1085년 선종)의 묘비

    13. 미카엘 경당: 대주교 발리름 폰 윌리히(1349년 선종)의 묘비

    14. 스테파노 경당: 대주교 게로(976년 선종)묘비. 1270년경 이전 도미니코 성당 소속이었던 소위 새성서 창유리(1280년경).

    대주교 아돌프 폰 시우엔부르크(1556년 선종)의 벽면 묘비로 7번과 대칭작.

    15. 대주교 프리드리히 폰 자르베르덴(1414년 선종) 묘비.

    16. 마리아 경당: 퀼른시 주보 제대. 1442년 스페판 로호너작품으로 이전 시청경당 소속. 원래 이자리는 아래 성모상이 있었음.

    17. 마일란트의 마돈나. 1164년 아리날트 폰 다셀이 마일란드로부터 퀼른으로 가져온 은총의 성모상으로 공경되었기에

    이 성모상이 있는 곳도 대성당의 주요 세 성소 중의 하나에 속함.


    중세에는 대성당의 제단석과 전례 중심석엔  대주교들과 주교좌 성당의 참사회원들만 착석할 수 있었다.

     

    18. 대제대. 1310년경. 중세의 가장 크고 널리 알려진 제대 중의 하나로

    이 제대에서  퀼른 대주교들은 고중을 향해 미사를 집전하는 특혜를 누렸음.
     

    19. 삼왕 유물함: 1190~1225년경 조각들은 유물함에 모셔진 삼왕에 관한 묘사들이 아니라 구약의 시작으로부터

    리스토 재림의 종말까지 전체를 포괄함. 그에 상응하여 옆면 아랫단에는 예언자와 왕들.

    그 윗단에는 신약을 대표하는 사도들이 병렬되어 있음.
    앞면에는 삼왕의 경배, 요르단 세례, 동방박사들에게 공헌하신 주님이 세계의 심판자로서 재림하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음.

    뒷면 아랫쪽에는 그리스도의 매 맞으심과 십자가형이,

    그 윗쪽에는 유물함이 모셔진 성 펩리스와 나르보르가월계관을 받는 장면이 표되어 있음.

    20. 제단부 성직자석. 1308년에서 1311년 104석으로 독일 최대

    21. 제단부 회화. 1340년경

    22. 제단부 기둥의 조각상들. 1290년경 그리스도 마리아 12사도

    23. 건물 상단부의 국왕 창유리. 1310년경 유다 왕국의 24국왕들과 묵시록의 24장로들.

    중앙 창유리에는 마리아의 아기예수께  경배드리는 삼왕

    24. 성 크리스토포쿠스 1470년경

    25. 아길률푸스 제대. 안트베르펜. 1520년경. 이전의 성 마리아 앗그라두스 성당 소속이었음.

    26. 바이어른 창유리 . 1842년 바이어른의 왕 루드비히 1세가 기증. 1848년 창틀에 삽입(오른쪽에서 왼족으로)
    가) 세례자 요한의 설교(위) : 카알대제, 프리드리히 바바로사, 헬레나, 콘스탄틴대제
    나) 목동과 삼왕의 경배(위). 예언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아래)
    다) 십자가에서 내리우심.(위), 4복음사가 (아래)
    라) 성령강림(위), 4대교부(아래)
     마) 스테파노의 순교(위), 성인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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