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주사(龍珠寺) 범종(梵鐘) - 국보 제120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10. 18. 05:15
용주사(龍珠寺) 범종(梵鐘) - 국보 제120호
범종각 주련
聞鐘聲煩惱斷(문종성번뇌단) 종소리를 듣고 번뇌를 끊으며
智慧長菩提生(지혜장보리생) 지혜가 증장하고 보리심이 생긴다.
용주사(龍珠寺) 범종(梵鐘) - 국보 제120호
이 종은 통일신라 (統一新羅) 말기(末期 ) 범종( 梵鐘 )으로서 우리나라 범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갖춘 거종( 巨鐘 )이다.
종에 음각된 신라 문성왕 16년(854)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종의 정상(頂上)은 신라종(新羅鐘)에서 보이는 음통(音筒)과 용뉴를 갖추고,종신(鐘身)에는 위아래의 문양대(紋樣帶)는 연주문(聯珠紋)과 여의두문(如意頭紋)으로 장식된
반원권(半圓圈)의 문양과 당초문( 唐草紋 )으로 조식( 彫飾 )되어 있고,
웃띠인 어깨띠에는 4개의 유곽내(乳廓內)에 각각 돌기된 9유(九乳)를 갖추고 있다.
종복(鐘腹)에는 네 군데에 연화문(蓮華紋)과 와문(渦文)으로 장식한 당좌(撞座)와 비천상( 飛天像 )을 배치하고 있는데,비천상은 앞뒤에 배치하고, 좌우(左右)에는 두광(頭光)을 갖추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삼존상(三尊像)을 배치 조식하고 있어,
신라종의 특징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어 고려시대 종과는 분명히 다른 배치방법(配置方法)을 하고 있다.
특히 당좌(撞座)는 8개의 연꽃잎을 중심(中心)으로 와문(渦紋)을 연속시켜 원형(圓形)을 이루었다.
아래띠인 구연대(口緣帶)는 웃띠와 달리 위아래 연주문 안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이 장식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종신에 음각(陰刻)으로 새긴 명문은 주조 당시부터의 것이 아니고,후대(後代)에 새겨넣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제작 과정과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이다.
전체적인 종의 형식(形式)과 양식(樣式)으로 보아 신라말기(新羅末期)의 범종으로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다.
크기는 총높이가 144cm, 구경(口徑)이 87cm이다.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신라말기에 제작된 이 범종은,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상원사 동종보다 조금 작다고 할 수 있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고 있다.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제작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것이라고
일제 식민사학의 관학자들의 주장을 따르는 강단사학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신라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송산동)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 =
'국내 나들이 > 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덕춘 골프채(등록문화재 제500호) (0) 2016.10.20 청년단 야구대회 우승기(靑年團 野球大會 優勝旗) - 등록문화재 제498호 (0) 2016.10.19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洪川 壽陀寺 塑造四天王像) (0) 2016.10.15 수타사 대적광전(壽陀寺 大寂光殿) (0) 2016.10.14 의왕 청계사 사적기비(義王 淸溪寺 事蹟記碑) (0) 201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