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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E in Art
    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16. 12. 31. 21:32

    MUSE in Art


    화가에게 창조적 발상과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던 뮤즈(MUSE)는 춤과 노래, 음악, 연극, 문화에 능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신(神)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가들은 예술 작품에 신의 영원한 지혜가 감추어져 있다고 믿었으며,

    러한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서 음악, 미술, 문학 등을 주관하는 신(神)인 "뮤즈"에게 호소하곤 했다고 한다.

    이처럼 예술가들에게 "뮤즈"란 오래전부터 아름다움의 원천이자 창작의 에너지였으며

     "뮤즈"는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뮤즈"의 모습은 사랑하는 연인, 반려자에서부터 수려한 외모의 모델, 신체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수,

    기품이 넘치는 귀부인,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 자연의 웅장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었다.

    화가들은 세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뮤즈"의 순간을 캔버스 속에 표현하고자 했다.

    화가의 시선을 통해 관찰되고 포착된 "뮤즈"가 담긴 명화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감상하자.

    (2017년도 한독)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 ~1925),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Carnation, Lily, Lily, Rose1885-1886, 캔버스에 유채, 174×153.7cm


    모델이 된 두 소녀는 화가 자신의 딸 도로시(왼쪽)와 함께 생활하던 일러스트 예술가 버나드의 딸 폴리(오른쪽)다.

    직접 대상을 관찰하여 그리는 그의 습관 탓에 이 두 소녀는 거의 두 달간을 같은 시간에 꼼짝없이 정원에 서 있어야만 했다.

    이 작품은 미묘한 파스텔조의 색감들이 빠른 붓질에 의해 서로 어울리며 전체적으로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다.

    서전트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인상파적 기법과 색채 등을 사용해 고유의 영역을 개척했다.

    또한 유럽 여러 나라의 다양한 풍경화와 풍속화를 제작해 영국과 미국의 인상주의 화풍 확립에 크게 이바지 했다.





    제임스 티솟(James Tissot, 1836∼1902)
    미의 전형(Portrait of Mrs. Kathleen Newton in a Red Dress and Black Bonnet)


    제임스 티솟(James Tissot)은 캐슬린 뉴톤(Kathleen Newton)이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젊고 매력적인 이혼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만남은 티솟의 삶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교양있고 옷을 잘 차려 입으며 잘 생긴 화가였던 티솟은 곧 대중적 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티솟은 사회로부터 퇴출되었고 캐슬린과 함께 Grove End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칩거 생활에 들어간다.

    이후 캐슬린 뉴튼은 티속의 뮤주가 되었고 그의 수많은 작품에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티속에게 있어 모든 의미에서 사랑 그 자체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오필리아(Ophelia, 1894), 캔버스에 유채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Hamlet)을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고뇌 끝에 지쳐버린 오필리아를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연못을 배경으로 고목나무에 걸터앉은 그녀의 모습은 비극적인 장면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19세기 혁명의 시대에 예술가들은 오필리아에게서 낭만주의의 전형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워터하우스 역시 비련의 여주인공인 오필리아의 모습을 눈부시고 화사하게, 그리고 동양적인 색채로 장식했다.

    그 시대에 장렬한 죽음은 영웅적인 것이었고 강렬한 불길 같은 사랑과 정열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정원에서 파라솔을 든 여인(Woman with a Parasol in a Garden, 1875)


    르누아르의 뮤즈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다르게 표현된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눈길이 머물렀던 기쁨, 그 아름다움과 행복의 세계를 공간에 기록한 화가이다.

    영원한 여름날의 햇살과 보이는 이를 도취시키는 색상, 몸을 흔드는 무희들, 빛을 발하는 누드들로 가득한 그의 작품 세계는

    자연에 대한 예리한 지각력과 자유분방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습, 즉 풀밭과 수풀,

    그 위에 비친 햇빛과 반짝이는 공기, 여름날의 온화하고 유쾌하며, 활기차고 화려한 색채를 묘사했다.

    르누아르에게는 풍경과 햇빛, 반짝이는 공기, 그 풍경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의 뮤즈였다.





    아메테오 모딜리아니(Amodeo Modigliani, 1884~1920)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Portrait of Jeanne Hebuterne in a Large Hat, 1918)


    모딜리아니는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창조한 독창적인 화풍의 작가이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이상과 기준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모딜리아니는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 종종 하얀 옷깃이라든지 귀걸이와 목걸이, 브로치, 혹은 머리장식들을 덧붙이곤 했다.

    하지만 모델인 에뷔테른이 쓰고 있는 검은 모자는 소박한 차림새, 우아한 손짓 및 표정과 함께

    내면적 아름다움을 지닌 사려 깊은 여인으로 그녀를 표현하는 장치로써 사용됐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Striped Robe, Fruit, and Anemones,1940


    1932년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는 마티스의 조수로서 일을 하다가 이후 모델로 발탁이 되었다.

    그녀는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의 예술적 성취를 발전시키고 보존하는데 크나 큰 영향력을 발휘한 존재가 되었으며,

    마티스 기법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뤄내는데 큰 기여를 한다.

    사실 마티스는 야수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만큼  초기에 진하고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었지만,

    리디아를 그리면서부터 좀 더 밝고 낙천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이게 된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Cossacks 1910


    바실리 칸딘스키는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자신의 회화에 음악성을 부여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이론부터 총체예술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여 공감각의 원리로 발전시켰다.

    그는 색의 상호작용과 기하학적인 경향을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색채에 음악적 감정을 부여하고자 했으며,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색조와 형태의 배치는 음악적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이 그림의 소용돌이 치는 구성은 원의 따뜻한 물결, 고음역의 노란색과 푸른색이 울려퍼짐과 공허한 차가움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 1907), 캔버스에 유채와 금, 은


    1907년 완성된 이 그림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라는 금융인의 딸을 모델로 하고 있다.

    클림트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7년 가량 모델이 된 아델레에게 볼륨감있는 드레스를 입히고, 화려한 보석 목걸이를 두르고,

    이탈리아 라베나 지역에서 보고 영감을 얻은 모자이크 패턴의 옷을 입히고, 왕좌의 자리에 앉힌다.

    그리곤 황금을 버무린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

    모델은 천사가 되기도 하고, 여왕이 되기도 하고, 비너스가 되기도 하고, 세상에 영예로운 모든 여성의 표상이 된다.

    이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클림트와 아델레는 비밀의 관계를 맺으며 서로 뮤즈로서 존재하게 된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Two Women with Musical Instrument, 1935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느의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은 프랑스 화가, 삽화가, 무대장치가, 판화가였으며 또한 시인이었다.

    아주 몽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섬세한 표현, 그리고 감미로운 파스텔 색채의 화풍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녀는 주로 소녀와 여인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두번 다시(Nevermore, 1897)


    문명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열대의 섬 타히티(Tahiti)에서 불같은 삶을 살다간 화가 고갱.
    그가 남긴 타히티 누드화 중 "Nevermore"는 남국의 신비스러운 푸른 색조와 화면을 가득 채운 여인의 나신이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이 여인은 고갱이 말년에 사랑에 빠졌던 타히티 소녀이다.

    그녀는 고갱의 아이를 사산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으며 뒤쪽의 여자들은 무엇인가를 수군거린다.

    고갱의 처절했던 마지막 삶을 함께했던 여인의 우울한 모습을 통해 그의 우울했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
    앨버 공작부인의 초상(Portrait of the Duchess of Alba, 1797)


    1795년 어느 여름날 앨버 공작부인이 고야의 아틀리에로 찾아왔다.

    이 때 고야의 나이는 53세였고, 앨버 공작부인은 35세였다.

    그녀의 용건은 재미있게도 얼굴 화장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급속하게 가까워졌고 은밀한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상복을 입은 앨버 공작부인이 손끝으로 가르킨 땅 위에는 "오로지 고야에게만"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부인의 손가락에 2개의 반지가 끼워져 있으며, 각각 다른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엔 "앨버"의 이름이 다른 하나엔 "고야"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페터 세버린 크뢰이어(Peder Severin Kroyer, 1851~1909)
    Summer Evening at Skagen, the Artist's Wife with a Dog on the Beach, 1892


    고흐와 동시대의 인상주의 화풍을 열었던 또 다른 인상주의 작가 세버린 크뢰이어의 작품으로

    모델은 뮤즈이자 아내였던 마리 크뢰이어이다.

    하지만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는 현실과 망상에 사로잡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게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마리 크뢰이어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화가의 광기도 있겠으나 마리 크뢰이어가 살았던 당시의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억압들이었다고 봐야 될 것 같다.

    남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났던 휴가지에서의 불같은 사랑은 주홍글씨로 돌아온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시골 무도회(dance a la campagne, 1883)


    이 작품은 미술상 뒤랑 뤼엘이 춤을 주제로 한 대작 2점을 주문해서 그려진 그림이다.

    모델은 르누아르의 친구인 폴 오귀스트 로트와 나중에 르누아르의 부인이 된 알린 샤리고이다.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의 모습을 그려낸 르누아르는 그림에 어떠한 사회적 주제를 담는다거나

    교묘하게 비판적 의식을 심어둔다거나 하는 "꾸밈"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행복하고도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지인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르누아르의 그림이 누가 보아도 편안하며, 울적한 사람의 기분조차 풀리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게 된 이유를

    이러한 작가의 작업 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
    퐁파드루 부인(Madame de Pompadour, 1759)


    퐁파드루 부인은 루이 15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한 턱에 루이 15세의 애첩 샤토루가 사망한 후에 그녀의 야망을 이루게 된다.

    수려한 외모뿐 아니라 높은 교양과 지적 수준이 상당했던 퐁파드루 부인에 의해

    궁정화가에 임명되었던 프랑수아 부셰는 그녀의 초상화를 수없이 그려냈다.

    또한 프랑스 도자기(세브르)를 후원하고 연구해 자신과 루이 15세의 이름을 딴 색상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은은한 분홍색은 "퐁파두르 핑크"라고 불리게 된다.





    앙리 루소(Henri Julien Félix Rousseau,1844~1910)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The Muse Inspiring the Poet, 1909)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재로 새로운 멤버인 마리 로랑생을 만난다.

    그녀는 꿈꾸는 듯 크고 깊은 눈을 가진 열아홉 살 여성으로, 스물두 살의 청년 아폴리네르는 대번에 그녀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1909년 화가 앙리 루소는 아폴리네르로부터 부탁을 받아 두 여인을 담은 초상을 그렸다.

    이 작품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에서 아폴리네르는 마치 기숙학교 학생 같은 순진한 얼굴로

    한 손에는 깃털 펜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종이를 쥐고 있다.

    반면 마리 로랑생은 약간 살집있는 몸에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무대 위에 디바, 또는 그리스 연극에서 여신 역을  맡은 여배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커스 스톤(Marcus Stone, 1840~1921)
    사랑에 빠져서(In Love Unknown)


    빅토리아 화풍의 화가. 마커스 스톤(Marcus Stone, 영국, 1840~1921)은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로얄 아카데미 준회원이었던 아버지 프랑크 스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빅토리아 양식의 그림을 지향했던 중요한 화가이다.

    당시 빅토리아풍의 에술은 아카데미의 미술이라는 이유로 괄시당했지만 그는 꾸준히 작품의 양식을 고수했다.

    연인들의 조심스러운 사랑, 귀엽고 아기자기한 오브제와 등장 인물들의 표정, 행동 묘사를 통해 소설같은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올랭피아(Olympia, 1863)


    올랭피아의 모델은 당시 프랑스 여류화가 "빅토림 뫼랑"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올랭피아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올랭피아의 도도하며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드는 날카로운 눈빛은 그녀가 화가임을 말해주는 듯 하다.

    마네는 같은 화가이자 자신의 모델이었던 그녀와 예술적인 견해를 같이 한다는 것이

    예술가의 입장에서 더없는 행복이자 행운이었을 것이다.

    올랭피아의 모델인 "빅토린 뫼랑"은 분명 "마네"의 "올랭피아" 제작에 있어

    큰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
    엘 할레오(El Jaleo, 1882)


    서전트는 1874년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했으며, 이 그림은 그가 187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는 스페인의 음악과 춤에 열광했고 초기 걸작 "스페인 댄서"를 발표하게 된다.

    "스페인 댄서"는 서전트가 시각적 표현 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연주자들은 일렬로 앉아 있는데 반해 여자 댄서의 움직임은 사선으로 되어 있다.

    이 사선은 시선을 그림 속으로 끌여들여 춤추는 여인을 따라 움직이게 한다.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
    Capri Girl on a Rooftop, 1878


    미국의 초기 인상주의 화가 서전트는 카프리의 풍경과 건물, 매혹적인 섬 주민에 매료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그를 사로잡은 것이 바로 열일곱 살의 모델 로시나였다.

    이 작품은 서전트가 로시나를 그린 작품들 중 그녀가 춤추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땅거미가 질 무렵 카프리의 전통적인 건축물의 옥상에서 민속의상을 입은 로시나가 동료의 탬버린 연주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흐릿한 하늘을 배경으로 팔을 들어 올리며 춤을 추는 로시나의 모습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파트너를 유혹하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서전트가 먼 발치에서 로시나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로버트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포르투갈 여인(Tall Portuguese Woman, 1916) 캔버스에 유채


    1915년부터 1916년까지 포르투갈 북부 Vila do Conde에서 생활하게 된 들로네 부부는 그 지역의 따뜻하고 맑은 빛에 매료됐다.

    로버트 들로네는 이전까지 추상적인 작업을 해왔지만 자연에 매료되어

    구상적이고 추상적인 요소들이 혼합된 강렬한 색채의 작품세계를 펼치게 된다.

    그의 아내 소니아 들로네로 남편의 강렬한 색채구성에 영감을 받아 패션디자인으로 진출하여 큰 명성을 얻게 됐다.

    이 부부에겐 포르투갈 북부의 자연이 뮤즈였고 시끌벅적했던 시장이 그들의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에너지 그 자체였다.

    또한 부부가 서로의 뮤즈이자 동반자였다.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파리시(The City of Paris, 1912)  캔버스에 유채


    이 그림은 "파리, 과거와 현재"의 세 가지 상징을 담고 있는 몽타주이다.

    왼쪽 부분은 루브르 가의 오래된 파리를 나타내고,

    중심 이미지는 나폴리 박물관의 폼페이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세 명의 여성들이다.

    오른쪽 부분의 에펠탑은 근대성의 상징이자 로버트 델로니 작품의 시리즈 주제로 쓰였다.

    이 그림은 델로니 일생의 작품 세계에 있어 전환점으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그는 동시성 개념에 관심이 있었고, 부분적인 혼합을 구성하여 이와 같은 성공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더 나아가 신체와 함께 추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더한 우화적인 병치구조를 연출함으로써 더 나은 기법을 탄생시켰다.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

    Mrs. CarlMeyerand Her Children. 1896


    존 싱어 서전트는 상류사회 인물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들의 집을 배경으로 인물이 근사하게 보이도록 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그가 그려준 귀족적인 본인의 모습을 좋아했고,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거의 500여 점의 초상화를 남겼다.

    게인즈버러와 레이놀즈의 뒤를 잇는 우아한 럭셔리 초상화는 카메라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회화 분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거의 초상화의 마지막 세대를 장식한 화가였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걸작으로,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소녀가 걸고 있는 진주 귀고리를 그림의 초점으로 사용하였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캔버스에는 “I V Meer”라는 서명뿐 날짜나 누구를 위해서 그린 그림이라는 정보는 없다.

    다만 큰 눈동자와 관능적인 입술, 특유의 시선과 표정이 보는 사람에게 비밀스러움이 어우러진 신비감을 주고 있다.

    마치 화가와 뮤즈 간의 신비스러운 관계를 암시하려는 듯하다.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거울 속의 비너스(RokebyV enus, 1647-1651)


    이 그림은 17세기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는 큐피드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여인이 미의 여신 비너스임을 보여준다.

    이 그림의 모델은 벨라스케스의 연인인 플라미니아 트리바로 전해진다.

    로마의 상류층 출신이자 20세의 꽃다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벨라스케스를 위해 관능적인 자세를 취해 주었고,

    벨라스케스는 미술사에 있어 가장 관능적인 비너스를 탄생시키게 된다.

    자신의 육체를 탐하는 관람자를 거울을 통해 오히려 비너스가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
    빛을 등지고 있는 누드(Nude Against the Light, 1908)


    보나르는 "마르테(Marthe de Meligny)"라는 조화(弔花)를 만드는 일을 하는 열여섯 살 소녀를 만난다.

    그 후 둘은 32년 동안 동거를 하는데 보나르가 58세 되는 해에 혼인신고를 하였다고 한다.

    이 둘의 관계를 "새와 새장"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보나르는 결벽증이 있는 그녀가 자주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목욕탕을 제대로 꾸며주었고 목욕하는 그녀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이유로 보나르는 마르테의 목욕하는 모습을 자주 그리게 되었고

    작품에 등장하는 마르테는 총 384번이나 된다고 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레이디 릴리트(Lady Lilith, 1868)


    이 여인은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벌였던 미술 유파인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뮤즈였던 여인으로 당시 가장 인기있는 모델이었다.

    리지(엘리자베스의 약칭)는 원래 모자가게 점원이었으나 라파엘 전파 형제회와 가까워지면서 라파엘 전파의 뮤즈로 데뷔하게 된다.

    모자가게 창문에 비친 그녀의 관능적인 입술, 슬픈 듯이 내려앉은 눈꺼풀과 긴 속눈썹,

    그리고 풍성하고 기다란 붉은 머리칼에 반한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그녀를 열정적으로 등장시킨다.

    그녀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예술의 여신 뮤즈로 승화되어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니콜라스 랑크레(Nicolas Lancret, 1690~1743)
    춤추는 카마르고(Mademoiselle de Camargo Dancing, 1730)


    루이 15세의 화려했던 베르사유의 무도회와 파리 가면무도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무용가 마리 안느(Marie-Anne de Cupis Camargo)를 그린 작품이다.

    당시 파리 오페라에서 최고의 발레리나로서 이름을 날렸던 마리 안느의 야외 무도회 공연을 화폭에 담았다.

    시적인 배경과 그녀의 기품있는 발레 동작을 섬세하게 표현해

    그녀의 짧았지만 인상 깊은 발레리나로서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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