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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대각국사 의천(高麗 大覺國師 義天)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6. 9. 8. 23:00
고려 대각국사 의천(高麗 大覺國師 義天)
고려 대각국사 의천(高麗 大覺國師 義天)
의천(義天, 1055~1101)은 고려시대의 왕족 출신 승려, 작가이다.
자는 의천(義天), 이름은 석후(釋煦) 또는 후(煦)이며, 호는 우세(祐世), 흔히 대각국사(大覺國師)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시호이다. 고려 문종(文宗)의 넷째 아들로서, 어머니는 인예태후(仁睿太后)이다.
순종, 선종, 숙종의 친동생이며, 추존왕 양헌왕의 이복 형이다. 대한불교천태종을 세운 한국 천태종의 중흥시조로서,
대한불교천태종에서 3대 종조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송악 출신이다. 문종은 자신의 아들들 중 누가 승려가 될 것인가를 묻자, 그가 자원하여 승려가 되었다.
1065년 외삼촌인 경덕국사 난원(景德國師 爛圓)를 스승으로 하여 계를 받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일찍이 요나라와 송나라를 방문, 순례하며 요 도종의 국사가 되고,
송나라를 방문해서는 각처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고, 송나라의 고승들을 만나 강론을 듣고 돌아왔다.
이후 흥왕사, 흥원사(興圓寺), 해인사의 주지를 거쳐 다시 흥왕사의 주지가 되었다.
의천은 왕자였지만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하였다. 이후 송나라에서 유학한 뒤,
많은 불교 서적을 가지고 귀국하여 문종이 창건한 개경 흥왕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송나라, 요나라, 일본 등지에서 수집해 온 불경을 연구하여 4,700권의 불교 연구 총서를 남겼다.
또 화폐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를 장려하기도 하였다. 의천은 죽은 후에 나라의 스승인 국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를 대각국사 의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의 초상화
보물 제1044호, 비단에 채색, 144×110.2㎝,
화기에도 있다시피 이 영정은 승려 화가인 도일비구(道日比丘)에 의해 1805년에 수정·보완된 것인데,
옛 영정이 계속 중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대각국사의 풍모가 잘 전신(傳神)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림에서 의천은 장식적인 의자에 앉아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데, 이 자세는 당시 보편적인 영정의 구도법을 보여준다.
오른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긴 주장자를 살짝 잡으면서 의젓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대각국사의 내면세계를 적절히 묘사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영롱한 눈매, 듬직한 주먹코, 꽉 다문 입, 여기에 이마와 입가의 주름살을 그려,
학식과 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초로의 고승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비교적 육중한 체구에 녹색의 장삼을 입고 이 위에 붉은 가사를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치고 있는데,
가사의 깃과 이음에 정교한 꽃무늬를 금선으로 그리고 옷자락과 띠를 날카롭게 날리게 한 점 등에서
이 작품의 격(格)과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말기 영정의 특징은 물론 앞시대의 양식적 특징도 잘 전해주는 당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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