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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안식처, 천주교 남한산성순교성지(天主敎 南漢山城殉敎聖地)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8. 6. 22. 04:55

    영혼의 안식처, 천주교 남한산성순교성지(天主敎 南漢山城殉敎聖地)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白紙死)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6명에 이른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63-58 (산성리)




    순교자 현양비(殉敎者 顯揚碑)


    광주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리상 요충지였으며,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1595(선조 28)에 현재와 같은 성곽이 축조되었고,

    1621년에 대대적인 개축공사가 있은 뒤 1626(인조 4)에 광주유수의 치소와 마을이 성안으로 이전되었다.  

    이처럼 광주유수의 치소가 이전되면서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고,

     박해 때마다 여러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치명 터가 되었다.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81)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1801) 때에는 이곳에서 최초로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66)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 행적과 성명을 알 수 있는 순교자들의 수는 극히 적다.

    이에 순교자 현양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순교정신을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남한산성의 피에타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교우들의 시신을 찾아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 일로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순교 복자와 함께 오늘 애써 찾아 손을 잡아 주어야 할 다양한 처지의사람들 얼굴도 떠올리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순교자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백지사형 조형물(白紙死刑 造形物)


    조선 시대의 행형제도는 대명률에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죄인을 사형에 처하려면 반드시 임금의 결제가 있어야만했다.

    그리고 지나친 참혹한 형벌은 점차 개선이 되는듯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는 예외였다.

    참수를 비롯한 군문효수와 심지어는 고문을 가장한 사형방법이 동원이 되고 집단으로 바위돌에 태를 쳐 죽이고

    시신을 함부로 훼손케 하는 등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가운데의 하나가 백지 사형이었다.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 대원군이 프랑스인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도를 탄압한 사건) 때에는

    백지사(白紙死)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 남한산성에서 시작되었는데,

    백지사형(白紙死刑)이란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韓紙)를 여러 겹 붙여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로 백지사 형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한덕운(韓德運)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金德深) 아우구스티노, 김윤심(金允深) 베드로,

    김성희(金聖熙) 암브로시오, 김차희(金次熙), 김경희(金敬熙), 김윤희(金允熙)와 김준원(金俊遠) 아니체도,

    정은 바오로, 정여삼 바오로, 정양묵 베드로, 홍성국 요한, 이 요한, 서 바오로, 오 안드레아,

    서 아우구스티노, 이화실, 윤서방, 이종여, 이치재 등 36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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