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의 딸, 가수 이난영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18. 10. 14. 20:33
목포의 딸, 가수 이난영공원
'목포의 눈물'의 가수 고(故) 이난영(1916~1965) 여사를 기념하는 '난영공원'은 목포 삼학도 내에 위치하고 있다.
2006년 4월 11일 개장한 이 공원은 1천여평의 부지에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와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이난영 여사의 유해가 묻힌 수목장, 체육시설 등이 있다.
목포시 양동에서 태어난 이난영 여사는 1934년 '불사조'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이듬해 손목인씨가 작곡한 '목포의 눈물'을 불러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과 가난, 절망에 몸부림치는 백성의 한을 달랬다.
이난영(李蘭影, 1916~1965)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옥례이고 지금의 북교초등학교를 다녔다.
유명한 여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목포에 공연 온 태양극단을 따라 나선 것이 가수의 출발이었다.
이후 오케이레코드사에 등용되었고, 1935년 '목포의 눈물'을 불러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외에도 해조곡, 목포는 항구다 등 목포와 관련된 많은 명곡을 남겼다.
목포는 항구다
조명암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오빠인 이봉룡 작곡
1. 영산강 안개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이별의 부두
2. 유달산 잔디밭에 놀든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흘러간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3.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
비오는 선창머리 돛대를 잡고
이별튼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목포의 눈물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설움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진가
못오는 님이면 이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1935년 8월 취입곡
목포의 눈물 가수 이난영 이곳에 잠들다.
경기도 파주 용미리에서 2006. 3. 25일에 대삼학도로 안장
(목포의 눈물 기념사업회)
‘이난영나무’로 명명한 배롱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안장하였다.
가수 이난영 삶의 흔적
본명은 이옥례(李玉禮), 예명은 난영(蘭影)
1616년 6월 6일 목포 양동에서 출생.
1923년 목포북교초등학교 입학
1933년 9월 ‘시드는 청춘’으로 가요계 데뷔, 11월 ‘불사조’로 첫히트
1934년 18세 나이에 ‘봄맞이’로 국내 정상급가수 반열에 오름
1935년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목포의 눈물’로 폭발적 인기를 얻음.
당시로는 최대인 5만 여장 이상 레코드 팔림.
1937년 22세에 작곡가 김해송(金海松)과 결혼.
‘목포의 눈물’에 이어 ‘해조곡’이 대히트함으로써 우리나라 ‘가요의 여왕’으로 우뚝 섬.
1942년 오빠 이봉룡이 작곡한 ‘목포는 항구다’ 대히트.
1946년 남편 김해송과 뮤지컬 전문쇼단 KPK악극단 창단
1950년 6.25전쟁 중 남편 행방불명
1965년 4월 11일 서울 자택에서 별세(한국연예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공동묘지에 안장. 생전에 1,000여곡 이상의 노래를 남김.
‘김씨스터즈’ 등 7남매를 세계적인 가수로 키워냄.
1969년 목포 유달산에 ‘목포의 눈물’ 노래비 세워짐
1986년 사후 21년 만에 ‘목포 시민의 상’수상
2003년 목포시 양동 이난영 생가터에 기념 소공원 조성
2006년 3월 25일 경기도 용미리 공동묘지에서 삼학도로 이장하여 수목장으로 안장
목포의 딸 ‘이난영’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다.
2006.3.25. 이난영기념사업회
세 마리 학의 섬, 삼학도(三鶴島)의 전설과 유래
삼학도에는 섬의 내력을 밝히는 수십 개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데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유달산에 한 젊은 장수가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그 늠름한 기개에 반해 마을의 세 처녀가 수시로 드나들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젊은 무사는 세 처녀를 불러
"나 역시 그대들을 사랑하나, 공부에 방해가 되니 공부가 끝날 때까지 이 곳을 떠나 다른 섬에서 기다려 주오"하고 청했다.
그 말대로 가서 기다리던 세 처녀는 무사를 기다리다 그리움에 사무쳐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었으나
세 마리 학으로 환생해서 유달산 주위를 돌며 구슬피 울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모르는 무사는 세마리 학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 쏘았다.
화살들이 명중하여 학들은 모두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게 된다.
그 후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으니 사람들은 그 섬을 세 마리 학의 섬이란 뜻의 '삼학도'라 불렀다.
'국내 나들이 > 공원(公園)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거름마을공원(제주 한경면) (0) 2018.11.08 서울 남산공원 (0) 2018.10.15 문경 아리랑 비림공원(碑林公園) (0) 2018.10.01 동탄신도시 센트럴파크 (0) 2018.07.15 수원 효원공원 내 전통 중국식정원 ‘월화원(粤華苑)’ (0) 201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