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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청각(沈淸閣)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8. 11. 6. 04:30

    심청각(沈淸閣)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印塘水)와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등

    백령도가 심청전(沈淸傳)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로 사상을 함향하고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고향을 그리는 대책사업으로 심청이 환생장면 등을 전시했을 뿐만 아니라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 고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








    심청각(沈淸閣)


    이곳 백령도는 고전 소설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두무진 앞바다 인당수.

    심청이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연봉 바위, 심청이 부활한 연꽃이 밀려와 번식한데서 유래한 연화리 마을 등

    심청전과 관련된 지명이 산재되어 있다.

    옹진군에서는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의 대표문화인 효를 관광 상품화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효 의식을 고취하려는 뜻에서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보이는 이곳에

    심청각을 건립하고 19991020일 준공, 개관하였다.







    백령도 심청각에서 바라본 북한의 장산곶(長山串)


    장산곶(長山串)

    황해남도 용연군 용연반도의 맨 끝부분으로 조선시대에는 아랑포영(阿郞浦營)과 조니포진(助泥浦鎭)이 설치되고,

    수군만호가 1명 배치되었던 군사상의 요지였다.

    장산곶의 앞바다는 해류의 소용돌이가 심하고 험한 바위와 암초가 많아 서해안 일대에서 해난사고가 가장 빈번하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또한 효녀 심청이 임당수(인당수)에 몸을 던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전래소설 심청전(沈淸傳)’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장산곶6·25전쟁 후의 미수복지구로, 백령도(白翎島대청도(大靑島소청도(小靑島)를 마주보고 있다.

    백령도에서 장산곶은 15이내의 근접지역으로, 백령도의 두무진에서 바라보면 인당수와 장산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산곶에서 북동쪽으로 약 13떨어진 거리에 몽금포(夢金浦)가 있으며, 동쪽으로 32떨어진 거리에 구미포(九味浦)가 있다.

    이들 지역은 예로부터 백사정(白沙汀)으로 불리던 명승지로 울창한 해송림에 둘러싸여 있으며, 가늘고 흰 세백사(細白沙) 해변으로 유명하다.  






    효녀 심청 동상





    沈淸頌(심청송) 


    어쩌면 이렇게도 순수무구한

    눈물겨운 효녀가 있으랴 

    네 순수무구한 극진한 이 효심은

    드디어 늙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하여

    세상의 밝은 광명 드렸으니

     

    어찌 천지만물이 감탄하지 않으려나

    네 이름 영원불멸의 효녀 심청(沈淸)이로다.

    여기 인당수 물결치는 백령도 언덕

    너 심청은 드높은 효심의 상징으로 영원하려나

    아 물결도 너울너울 세월도 너울너울




    백령도에 와서 - 고은


    백령도에 와서

    나의 시대를 말하지 말라

    여기 오지 않고

    나의 조국 절반도 말하지 말라

     

    여기 오지 않고

    너의 애 타는 사랑을 말하지 말라

     

    오천 년의 백령도

    여기 와

    저 심청 인당수의 수평선을 보아라

    한밤중

    온통 파묻히는 파도소리를 들어라

    비로소 가슴 가득히

    너이고

    나인

    백령도 아침 햇빛을 맞이하라






    심청의 출생


    고려 초 황주 도화동에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가운이 쇠하여 벼슬이 끊어지고 이십세를 전후하여 앞을 못 보게 되니 뉘라서 대접할까마는 본디 양반의 후예라

    청렴정직하고 지개가 고상하므로 그 동네 모두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의 아내 곽씨부인 또한 덕행이 뛰어나고 아름다우며 절개가 곧아서 무슨 일이든지 감당 못할 이 없었으나

    가진 재산이 없고 남편 또한 봉사인지라 몸을 바치고 품을 팔아 제사를 섬기고 가장을 공경하니 마을사람들 모두 칭찬하였다.

    그러나 그같이 지내는 중에도 심봉사의 마음에 한이 있으니 슬하에 한점 혈육이 없는 것이라.

    이에 부인을 불러 앉혀 소원을 말하고, 재물이 생기는대로 정성을 게을리 하지 않으니

    갑자 사월초파일에 심봉사의 부인이 꿈 하나를 얻었으되 선인옥녀 하늘에서 내려오는 꿈이라.

    심봉사 또한 같은 을 얻으니 태몽인줄 짐작하고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그달로 부터 태기가 있어서 곽씨부인이 범절을 조심하고 열달을 고이 채우고 해산을 하니 선녀 같은 딸이더라.

    그러나 슬프도다.

    곽씨부인 산후에 별증이 일어나 정신없이 앓는데 심봉사 백방으로 문의하여 약도 쓰고 굿도 하였으나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곽씨부인 유언하매 이 아이가 살아나 걸음할제 내무덤 찾아와 상봉케 해주며, 아이 이름을 심청이라 불러달라 하고

    딸꾹질 두어번에 숨을 거두니 도화동 사람들 모두 나와 슬퍼하며 극진히 장사를 치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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