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
    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19. 2. 26. 05:39

    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 경기도 기념물 제200


    농촌진흥청 북서쪽 여기산(麗妓山) 밑에 있는 저수지로,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불린다.

    현재는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의 시험답(試驗畓)과 인근 논의 관개용 수원 및 시민들의 쉼터인 서호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축만제의 축조연대는 1799(정조 23)으로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로 조성된 관개 저수지이다.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일련의 사업으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하였다고 한다.

    당시 정조는 수원성의 동서남북에 네 개의 호수(四湖)를 축조하였다.

    북지(北池)는 수원 화성 북문 북쪽에 위치한 일명 만석거(萬石渠)를 말하는 것으로 1795년에 완성한 속칭 조기정방죽을 가리킨다.

    또한 남지(南池)는 원명 만년제(萬年堤)라 하여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시설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東池)는 수원시 지동에 위치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형체를 알 수가 없다.

    축만제의 규모는 문헌상 제방의 길이가 1,246(), 높이 8, 두께 7.5, 수심 7, 수문 2개로 되어 있다.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 아직도 고목들이 서 있다.

    보수관리는 축제 후 4년만에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도감관(都監官감관(監官농감(農監) 등을 두어

    관수와 전장관리를 맡게 하고, 이에서 생기는 도조(賭租)는 수원 화성의 축성고(築城庫)에납입하였다는 것을 보면

    제방 아래 몽리구역(蒙利區域, 물이 들어와 관개의 혜택을 받는 곳)의 농지는 국둔전(國屯田)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표석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축만제의 역사적 배경과 중요성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20161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67차 집행위원회에서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국내 최초 등재되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






















    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축만제(祝萬堤)1799(정조 23)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 너비 720()이라는

    당시로서는 최대 크기로 조성된 저수지이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에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萬石渠),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萬年堤)를 축조했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축만제를 조성하였고,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수익은 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으로서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로 불린다.

    정조시대의 농업 기반시설은 일제강점기 권업모범장(勤業摸範場),

    해방 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 설립으로 이어졌고, 수원은 20세기 농업 중심지가 되었다.

    축만제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1611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의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