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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의선사 동상(艸衣禪師 銅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9. 6. 20. 21:30

    초의선사 동상(艸衣禪師 銅像)



    초의선사(艸衣禪師)


    초의(艸衣)는 조선 정조 10(1786) 45일 전남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속성(俗姓)은 흥성 장()씨이며 이름은 의순(意恂)이다.

    초의(艸衣)라는 호는 출가 후 스승 완호(玩虎) 윤우(倫佑)로 부터 받은 것이며 일지암(一枝庵)은 재호(齎號)이다.

    15세 때 나주시 남평에 있는 운흥사(雲興寺)로 출가하였으며

    19세 때 해남 대둔사(大芚寺)에서 완호(玩虎)스님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탱화를 잘 그려서 당대 오도자(吳道者)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한국 최고의 근대화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초의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서예는 천의무봉(天衣無縫) 바로 그것이었다.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웠으며

    완당 김정희(金正喜) 등 당대의 석학들과 종파를 초월하여 교유하였다.

    39세 때 대흥사 뒷편에 일지암(一枝庵)을 중건하고,

    이곳에서 초의선(艸衣禪),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專) 등을 저술했다.

    55(1840)에 헌종(憲宗)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宗師)라는 시호(諡號)를 받았으며

    58(1843)에 고향을 찾아 집은 다 허물어가지고 잡초만 무성한 부모의 무덤을 보며 눈물로 시를 지었는데

    귀고향(歸故鄕)이라는 시()이다.

    1866(고종 3) 82일 세수(世數) 81, 법랍(法臘) 66세로 입적(入寂)하셨다.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석가유미회 가섭기능전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옛 부처님 나기 전에도 응연하게 한 상은 둥글었네.

    석가모니 부처님도 알지 못하는걸 어찌 가섭이 전할까?



    명선(茗禪)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남긴 많은 글씨 중에 명선(茗禪)’이 있다.

    이 명선은 초의선사가 추사에게 정성스레 만든 차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써서 보낸 글이다.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혹은, ()이 차를 뜻하기도 하지만 싹을 뜻하는 글이어서 차는 선의 싹이라고도 한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초의선사 동상


    초의선사 동상은 노년의 모습을 그린 영정을 보고 조성하였다. 선사는 출가 후 해남 대흥사에서 일생을 보냈다.

    서른에 한양으로 올라가 추사 김정희, 해거 홍현주, 자하 신위 같은 뛰어난 명사들을 만나 교분을 맺은 뒤 일생동안 교류했다.

    선풍(禪風)을 진작시켜 대선사(大禪師)로 추앙받았고, 당대 최고 종사(宗師)의 지위에 올랐다.

    한국 다도를 정립한 다성(茶聖)이면서 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조선을 대표하는 시승(詩僧)으로 꼽힌다.

    동상은 조각가 노정용이 5년에 걸쳐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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