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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의 영정(影幀)을 모신 길상사(吉祥祠) -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11. 12. 04:30
김유신 장군의 영정(影幀)을 모신 길상사(吉祥祠) -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
이곳은 도당산(都堂山)에 있는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다.
신라 때부터 사당을 세워 나라에서 춘추(春秋)로 향(香)과 축(祝)을 내려 제사를 지냈으나,
조선 태조 8년(1399)부터는 소재관(所在官, 진천현감)으로 제사케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때부터 김유신의 태가 묻힌 태령산(胎靈山) 아래 사당을 건립하고
국행제(國行祭)를 지내오다가, 1408년(태종 8)부터 관행제(官行祭)로 치제(致祭)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병화를 입어 폐허가 된 것을
1851년(철종 2) 백곡면 구수리 개죽마을에 죽계사(竹溪祠)를 세워 모셨으나 고종초에 훼철되었으며,
다시 도당산성(都堂山城) 아래에 서발한사당(舒發翰祠堂)을 건립하였으나 1922년 대홍수로 무너져,
1927년 김만희의 후원으로 현 위치에 재건하고 길상사라 하였다.
1954년에는 『길상사지(吉祥祠誌)』를 발간하였으며, 1957년에 흥무대왕신성비(興武大王神聖碑)를 세웠다.
1959년에 전면 개축하고, 1975년 중건하였다. 본전인 흥무전(興武殿)은 콘크리트조 기와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주심포(柱心包) 팔작집인데, 그 안에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앞뜰에 김유신장군사적비가 있고, 입구에는 길상사 중건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김유신은 만노군(萬弩郡, 지금의 충북 진천)에서 태수 김서현(金舒玄)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화랑(花郞)이 되고 35세에 낭비성(娘臂城, 충북 청원) 싸움에서 공을 세워 압량주(押梁州, 경북 경산) 도독(都督)이 되었다.
53세에는 비담 등 반란군을 물리치고, 60세에는 김춘추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하니 태종 무열왕(太宗 武烈王, 신라 제29대 왕)이다.
왕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을 추진하여, 66세에 백제를, 74세에 고구려를 멸하여 통일을 완수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올랐다.
뒤에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김유신이 이곳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진천군내에는 관련 유적지가 많이 있다.
주변에 그의 탄생지와 태를 묻은 태령산 일대는 국가사적 제4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벽암리)
길상사(吉祥祠)
진호문(鎭護門)
흥무전(興武殿)
흥무대왕 김유신 영정(興武大王 金庾信 影幀)
新羅開國公太大角干純忠壯烈興武王神聖碑(신라개국공태대각간순충장렬흥무왕신성비)
金庾信將軍史蹟碑(김유신장군사적비)
吉祥祠重建事蹟碑(길상사중건사적비)
金公萬熙尊聖慕先碑(김공만희존성모선비)
김유신의 후손으로 길상사내에 세워진 김유신장군을 기념하는
'신라개국공태대각간흥무왕신성비'의 비문을 쓴 김만희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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